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꼭대기에 핀 꽃

바람아님 2016. 4. 16. 07:56

(출처-조선일보 2016.04.1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산꼭대기에 핀 꽃


누가 심었느냐!
저 험한 절벽 위에

붉은 꽃잎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구름바다
푸른 소나무 사이로

어럽쇼!
집 한 채 숨어있구나.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꼭대기에 핀 꽃

山頂花

誰種絶險花(수종절험화)


雜紅隕如雨(잡홍운여우)


松靑雲氣中(송청운기중)


猶有一家住(유유일가주)


1819년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가 지었다. 
강원도 춘천 부사(府使)로 부임한 지 이태 되는 해 봄철 청평산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산길로 들어서 신록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가던 시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험한 절벽으로 울긋불긋한 꽃잎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아니 저 험한 곳에 누가 꽃을 많이 심어 놓은 것일까? 
의아한 생각이 들어 쳐다보니 흰 구름 아래 소나무가 짙푸른 깊은 산중일 뿐이다. 
그런데 어라! 숲 한 켠에 누가 볼세라 오두막 한 채가 숨어 있다.
 
저런 곳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살 줄 어떻게 알았으랴? 
집주인이 세상을 피해 숨었을망정 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꽃을 좋아했나 보다.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을 산중에 심었으련만 오늘은 내게 들켰다. 
남의 비밀스러운 정원을 들여다본 듯하다. 가던 길을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