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4.1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옛사람은 자기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박물관 구석에 놓인 거무튀튀한 구리 거울은 아무리 광이 나게 닦아도 선명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 않다.
지금이야 도처에 거울이라 거울 귀한 줄을 모른다.
연암 박지원은 자기 형님이 세상을 뜨자 이런 시를 남겼다.
연암 박지원은 자기 형님이 세상을 뜨자 이런 시를 남겼다.
"형님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고. 아버님 생각날 땐 우리 형님 보았었네.
오늘 형님 그리워도 어데서 본단 말가. 의관을 갖춰 입고 시냇가로 간다네.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세상을 뜬 형님이 보고 싶어 의관을 갖춰 입고 냇가로 가는 뜻은 내 모습 속에 형님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물가에 서서 수면 위를 굽어본다. 거기에 돌아가신 형님이 서 계시다.
성호 이익 선생은 '경명(鏡銘)'에서 이렇게 썼다.
성호 이익 선생은 '경명(鏡銘)'에서 이렇게 썼다.
"얼굴에 때 묻어도, 사람은 혹 말 안 하지.
그래서 거울은 말없이, 모습 비춰 허물을 보여준다네.
입 없는 보좌관과 한 가지거니, 입 있는 사람보다 한결 낫구나.
마음 두어 살핌이, 무심히 다 드러냄만 어이 같으리.
(面有汙, 人或不告. 以故鏡不言, 寫影以示咎. 無口之輔, 勝似有口. 有心之察, 豈若無心之皆露.)"
내가 잘못해도 옆에서 잘 지적하지 못한다. 가까우면 가까워 말 못 하고, 어려우면 어려워 입을 다문다.
내가 잘못해도 옆에서 잘 지적하지 못한다. 가까우면 가까워 말 못 하고, 어려우면 어려워 입을 다문다.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은 채 몸집을 불리다가 뒤늦게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어 소용이 없다.
얼굴에 묻은 때처럼 알기 쉬운 것이 없지만 남들이 얘기를 안 해주면 나는 잘 모른다.
곁에 거울이 있으면 굳이 남의 눈에 기댈 일이 없다. 내가 내 모습을 직접 비춰 보고 수시로 점검하면 된다.
그래서 성호는 거울을 무구지보(無口之輔), 즉 입 없는 보좌관이라고 명명했다.
얼굴에 묻은 때는 거울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마음에 앉은 허물은 어떤 거울에 비춰야 하나?
종이 거울, 즉 책에 비춰 살피면 된다.
주나라 무왕(武王)은 '경명(鏡銘)'에서 "거울에 비추어 모습을 보고, 사람에 비추어 길흉을 아네.
(以鏡自照, 見形容. 以人自照, 知吉凶.)"라 했다.
이것은 또 사람 거울 이야기다.
어느 거울에든 자주 비춰 밝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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