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노트북을 열며] 중국에는 항의도 못하나

바람아님 2016. 6. 9. 23:55
중앙일보 2016.06.09. 00:11

딴 나라 얘기라고 생각했다. 날씨 좋은 날은 사람 표정이 달라지고, 시간을 내서라도 볕을 쬐는 것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도 이러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4월 한 달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환경부 기준치 이하인 날은 나흘뿐이었다. 세계보건기구 권고치 이하였던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러니 먼지 없는 날을 기다리는 게 이상할 이유가 없다. 야외 활동을 몰아서 한다고 핀잔줄 수도 없다.

혹시 과민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살 만하니 공기 질도 챙기게 된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2000년대 초반보다 분명 낮아졌다. 그런데 대기 질 개선은 2013년부터 주춤하고 있다. 체감하는 공기 질은 더 나빠졌다. 황사 때문이다.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

2012년 황사가 온 날은 하루였다. 지난해에는 15일이나 됐다. 흙바람인 황사가 심해도 오염물질인 미세먼지는 적을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먼지와 보이는 황사를 구분할 재주는 누구도 없다. ‘공기가 더 나빠졌어’라고 불평하는 건 정당하다.

당연히 서울이 제일 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서해 백령도의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 시청 주변 서소문과 비슷하다. 관악산 정상과 서울 도심의 농도 차이도 크지 않다. 환경부의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람 없이 공기가 갇혀 있으면 국내 영향이 커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편서풍이 불면 국외 영향이 더 커진다는 얘기다. 환경부의 종합 정리는 이렇다. “국외 영향이 30~50%라고 분석되나 고농도일 때는 60~80%에 육박합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순서상 국내 대책이 1번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국외 대책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모두 중국 탓’은 핑계고, ‘모두 내 탓’은 오도다. 심할 때는 80%, 적어도 30%에 해당하는 책임이 있는 공범을 그냥 둘 순 없는 것 아닌가. 정부 대책에 국외 대책에 대한 언급이 없지는 않다. 환경장관회의, 대기 질 모니터링 협력, 비상채널 구축, 공동 연구 확대 등이다. 이미 해오던 것들이다. 극심해진 미세먼지 고통에 따라 강화하거나 새로 하겠다는 건 잘 보이지 않는다.


꾸준히 제대로 하는 게 매번 새로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항의는 해야 하지 않나. 미국은 중국이 닭발에 붙인 관세를 놓고도 으르렁댄다. 일상적 삶을 바꿔놓은 미세먼지가, 건강을 위협하는 오염물질이 닭발보다도 하찮은가. 환경단체의 태도도 아쉽다. 화력 발전을 향한 고함처럼 중국에 대해서도 아우성쳐야 한다.


항의도, 요구도 못하는 정부의 태도가 우리가 소국이어서 그렇다면 서글프다. 제대로 따질 만큼 실증 연구가 안 돼 있어서라면 한심하며, 소탐대실이라는 외교적 판단 때문이라면 국민 일상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닌가 싶어 아쉽다. 이제 우리는 중국에 항의도 못하는 처지인가.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