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프런티어’ 국가만이 저성장 이겨낼 수 있다
(출처-조선일보 2016.06.11 하진수·온혜선 조선비즈 기자/ 편집=차소현)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꼽히는 브뤼겔연구소의 군트람 볼프 소장은 기술 프런티어가 되지 않고는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볼프 소장이 말하는 기술 프런티어는 무엇보다 정치가 안정됐고,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며,
법이나 제도의 질이 높은 국가를 뜻한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내한한 볼프 소장을 만났다.
군트람 볼프 브뤼겔연구소 소장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꼽히는 브뤼겔연구소의 군트람 볼프(Wolff) 소장은 기술 프런티어가 되지 않고는
볼프 소장이 말하는 기술 프런티어는 무엇보다 정치가 안정됐고,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며,
유럽을 예로 들자면 높은 실업률과 악성 부채로 인한 금융권 부실, 난민 유입과 테러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불안
"전 세계 정책결정권자의 중요한 임무는 불필요한 제도를 개선하고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볼프 소장은 독일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와 IMF(국제통화기금) 자문관을 역임한 유럽 경제 전문가다.
▲ 군트람 볼프 브뤼겔연구소 소장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의 그림자가 짙습니다.
기업들의 투자도 줄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기업들이 현금을 풀지 않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기업들이 왜 투자를 하지 않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자본의 가격은 매우 싼데도(이자율이
낮은데도)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정부 정책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20년 후에 정책이나 제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기업들에 아무리 투자를 독려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기술 프런티어 국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어디가 있을까요.
"작은 의미에서 본다면 기계 분야는 독일을 꼽을 수 있고,
일부 전기·전자 시장에서는 한국이 기술 프런티어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이 가장 생산성이 높은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이 부분적으로만 기술 프런티어 국가에 포함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기술 프런티어가 되기 위한 정부 역할은 무엇인가요.
"한국을 집어 얘기하기는 다소 힘들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원이 필요한 곳에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 스스로는 인프라와 인적 자원 등에 대한 공공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유용성이 떨어지는 곳에 대한 투자는 줄여야 합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남부 유럽의 많은 나라는 연구개발비나 교육비, 공공 인프라 비용과 같은 줄이지 말아야 할 것을
줄였습니다. 이런 정책은 단기적인 처방일 뿐입니다. 미래를 위한 비용은 줄이면 안 됩니다.
또 하나 강조하자면 정부가 정책을 수행할 때 집행하는 예산은 항상 균형될 필요는 없습니다.
일시적인 충격을 예로 들자면 이에 따른 예산은 일시적인 재정 적자로 충당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균형 예산을 맞추려 한다면 정부 지출의 구성을 바꿔야만 합니다."
―세계적으로는 청년층의 실업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기업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시기에 젊은이들을 더 적게 채용하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 중에 누가 일을 잘하고 못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죠. 기업들은 자연스레 경력자를 선호하게 됩니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 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고용 계약 유연화와 같은 정책도 청년층 취업난 해소에 도움이 됩니다.
고용 계약이 지나치게 엄격할 경우 기존 근로자로 인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기 어렵습니다.
벨기에는 이미 고용된 사람에 대한 해고 요건을 쉽게 하자 청년층 취업이 증가했습니다."
―각국의 부의 편중 현상도 정치적 안정을 저해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부의 편중 현상을 다루는 연구도 많아지고 있고 미국을 비롯해 한국, 유럽 등지에서는 부자에 대해 과세하자는
부유세(富裕稅) 도입 논란도 일고 있습니다. 균형 있는 부의 재분배란 무엇일까요.
"저는 부유세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대신 상속세를 지지합니다.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는 항상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부유세는 비즈니스맨의 의욕을 꺾을 수 있습니다.
반면 상속에 세금을 매기면, 부자의 부가 자식에게 넘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위 1%, 5%, 10%에 소득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는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합니다.
정말로 제대로 된 부의 재분배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보다도 재산세, 소득세 등에 대한 광범위한
글로벌 공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기 마련이죠.
G7, G20 국가도 소득에 대한 과세에 대해 공조해야 합니다."
―기술 프런티어를 언급하면서 독일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EU 국가들의 잠재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재정확대 정책 덕에 유럽은 약 2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스페인에서만 2015년에 5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습니다. 스페인 인구가 4800만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많은 난민 유입,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미국 대선 등과 같은 리스크가 상존합니다. 중국의 금융 위기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변수입니다.
이러한 리스크 중에서 두 개라도 한 번에 터지면 통화정책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합니다.
유럽 경제는 다음번에 발생할 수 있는 쇼크에 매우 취약한 실정입니다."
―중국의 금융 위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만.
"중국은 투자하는 나라에서 소비하는 나라로 바뀌는 중입니다. 이는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경기 후퇴가 수반됩니다.
정부가 경기 둔화를 방지하려고 해서 빌딩이나 도로 등을 건설한다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결국 중국의 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국 중산층이 제대로 된 소득을 가지고 소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는 복지제도, 서비스 분야, 건강 분야 등을 구축해야 합니다. 연금 정책도 시행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국발 금융 위기가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금융 시스템에 많은 문제(부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브뤼겔연구소 |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브뤼겔연구소는 글로벌 경제, 금융, 정부 규제, 미래 정보 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유럽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05년 설립됐으며, EU 회원국과 글로벌 기업 및 기관 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
: 폴리시 믹스 | 두 가지 이상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조합하는 것을 뜻한다. 유일호 부총리는 지난달 “산업 구조 조정을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쓰기보다는 폴리시 믹스가 돼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
: 기술 프런티어 | 정치·경제·사회가 안정돼 있어 기업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경영 활동에 나설 환경을 말한다. 군트람 볼프 브뤼겔연구소장에 따르면 기술 프런티어 국가에 속하지 않은 기업들은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불신으로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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