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6.30 권석하 영국 주재 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영국살이 어느새 34년
'半한국인 半영국인' 여기던 딸, 브렉시트 결정 뒤 엄청난 충격
英·EU는 利害만 따진 결혼…
이해타산에 밝은 영국인들이 손해보는 일 계속할 리가
"아빠, 한국 여권 되살릴 수 있을까요?" 브렉시트 투표 며칠 뒤 딸이 진지하게 물어 왔다.
이번 사태로 영국인은 물론 온 세계가 충격에 빠졌지만 사실은 이런 대단한 반응이 내겐 더 놀랍다.
역사적으로 영국, 특히 잉글랜드는 한 번도 자신을 유럽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유럽과 '팔 하나 거리(arm's length)'만큼 떨어져서 관계해 왔다.
'분할해 지배하고(divide and rule), 견제해서 균형을 맞추고(check and balance)'가 영국이 유럽을 대하고 다루는 태도였다.
유럽 국가들을 이간질하고 서로 반목하게 해서 세력 균형을 추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을 지배하는 유일한 강국이 생기면 영국은 전쟁에 휘말렸다.
영국은 항상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거리를 두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유럽이 '팔 하나의 거리' 안으로
들어와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지자 이혼을 결심하게 된 셈이다.
굳이 말하자면 영국과 EU의 관계는 오로지 이해(利害)를 따져 이루어진 결혼이고,
다른 EU 국가들끼리는 이해와 필요가 합쳐져 맺어진 결혼이다.
국경이 맞닿아 있는 국가들엔 'EU에 의한 평화보장'이라는 결혼 사유가 있다.
1, 2차대전 중 극심한 피해를 본 프랑스·독일·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이탈리아가 적극 참여해 EU를 창설했다.
그러나 도버 해협이라는 안전지대를 둔 영국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북해에 홀로 떨어져 있는 아이슬란드와 유럽 대륙 북쪽 끝 노르웨이가 EU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병원 처방전을 내주는 저 영국인이 나를 어떻게 느낄까? 저 사람은 과연 어느 쪽에 투표했을까?
평소 친절했던 옆집 가족은 이웃에 사는 우리 가족을 실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34년 동안 영국에 살면서
해본 적 없다가 이번에 처음 했다. 이걸 위축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28일 저녁 10시 45분 영국 의회 재투표 운동 사이트에 400만명, 이 글을 쓰고 있는 29일 새벽 1시 반에는 400만7582명이
서명을 했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가움은 내 감정적 반응일 뿐, 재투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니 답답하다.
'時事論壇 > 핫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스크에서] 各自圖生의 시대 (0) | 2016.07.04 |
---|---|
[김영희 칼럼] 사드를 포기하자 (0) | 2016.07.01 |
[사설] 브렉시트 뒤 분노의 민심, 한국도 예외 아니다 (0) | 2016.06.28 |
[취재파일] 브렉시트, 우리 기업에 미칠 영향은? (0) | 2016.06.25 |
[사설]美中 묵인 아래 핵물자 수입한 北… 한국은 뒤통수 맞았다 (0) | 2016.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