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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의 영화 & 역사] 알렉산드로스, 스승의 조카를 사자 우리에 처넣다

바람아님 2016. 7. 6. 08:53

(출처-조선일보 2016.07.06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마케도니아왕 알렉산드로스, 일부에선 '싸움광' 폄하하지만 역사가 가는 방향 이끈 지도자
꺼져가던 그리스 문명에 동방의 숨결 불어넣은 헬레니즘 문명 뿌리 심어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아버지는 호색한에 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마녀였다. 
왕이었던 아버지는 동맹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툭하면 새 아내를 맞았고 왕비인 어머니는 
그런 남편이 가까이 오는 게 싫어 침실에 뱀을 두고 잤다. 
아이가 집에 정을 못 붙이고 밖으로 도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는 숱하게 전쟁을 치르며 태어난 곳에서 수천㎞나 떨어진 인도까지 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의 그 13년 여정을 담은 영화다. 
알렉산드로스 역은 브래드 피트의 아일랜드 '짝퉁' 콜린 패럴이 맡았다. 
어머니는 "술에 취해 왕궁에서 갈지자로 돌아다니는 저 사람이 아니라 제우스가 진짜 네 아버지"라고 가르쳤다
알렉산드로스가 그 말을 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는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라고 선생 하나는 최고를 붙여 줬다. 그리스의 스승이라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사람이다. 
윤리학에서 의학까지 두루 가르쳤지만 스승의 수업 말미는 항상 같았다. "그리스는 최고다." 
나중에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화장실 변기까지 황금으로 만든 그 문명을 보고 입이 벌어진다. 
"그리스가 최고라더니…."

힘의 공백 상태였던 그리스를 무력으로 통일한 이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였다. 
잔혹했던 필리포스 2세가 죽자 그리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아들이 있는데 이제 겨우 스물이래. 그들은 몰랐다. 
늙은 호랑이가 무시무시한 괴물을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말을 잘 탔던 알렉산드로스는 기병대를 창설해 고대 전쟁사를 새로 썼다. 보병의 창 길이는 두 배로 늘였다. 
그리스 보병들이 방패를 모아 들고 영차영차 진군할 때 마케도니아 보병들은 5m나 되는 창으로 이들을 콕콕 찔러 
다가오지 못하게 했고, 이 틈을 타 기병대가 옆구리를 후벼 팠다. 이른바 '망치와 모루' 전법이다. 
어쩌다 이겼겠지, 정신 못 차린 테바이가 아테네와 힘을 합쳐 또 한 번 알렉산드로스에게 싸움을 건다. 안 하는 게 좋았다. 
도시는 흔적만 남고 주민은 모조리 노예로 팔려나갔다. 알렉산드로스는 본격적으로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한다. 
원정군을 코린토스에 모을 때 그리스의 명사들이 무운을 빌러 왔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만 안 왔다. 
스승이 철학자라서 철학자에 대한 존경이 남달랐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찾아갔다가 
"햇빛을 가리니 좀 비켜 달라"는 핀잔만 듣는다. 
무례한 놈, 부관들이 칼을 뽑자 알렉산드로스는 자기가 왕이 아니었으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기술 절반을 공개하겠다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한다.
[남정욱의 영화 & 역사] 알렉산드로스, 스승의 조카를 사자 우리에 처넣다
/이철원 기자
영화 속 알렉산드로스는 일상과 신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신비주의에 빠진 게이(gay)다. 너무 많이 나갔다. 
양성애자였을 가능성은 있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와 벌인 2차전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미녀들을 보고 
"내 눈에 고문이로다" 탄식한다. 생포한 다리우스의 아내와 딸들이 절세 미녀라는 말을 듣고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
(이게 게이라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다. 나중에 그는 다리우스의 딸 스타리라를 아내로 삼는다). 
그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절대 나누지 않았다. 
아시아 원정 중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과 정치학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는 말을 듣고 편지 한 장을 써 보냈다.
'스승님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 그런데 책을 내셨다니 좀 어이가 없네요. 
제가 스승님께 배웠던 것을 남들도 다 알게 된다면 대체 저는 무엇으로 남들을 능가한다는 말입니까. 
모쪼록 건강하십시오.' 
마지막 문장은 약간 협박처럼 들린다. 
알렉산드로스의 편지를 받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땀을 흘리며 제자에게 변명의 답장을 보내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전쟁 일지(日誌)로만 보는 사람들은 "어린놈이 싸움만 잘해"라며 그를 깔고 본다. 질 낮은 비판이다. 
그 싸움의 결과를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개인의 욕망이 역사가 가는 방향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고대에 딱 둘이다. 
원조가 알렉산드로스였고, 후계자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알렉산드로스꺼져가던 그리스 문명에 동방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헬레니즘이 유대인들의 헤브라이즘과 만나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된다. 
두 사람은 헬레니즘이라는 계주를 함께 뛰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말년은 아버지처럼 주정뱅이에 폭군이었다. 
무릎을 꿇고 절하는 페르시아 예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측근 칼리스테네스를 사자 우리에 던져 넣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였다. 스승에 대한 존경은 오래전에 끝났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