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모어 대통령상 건너편 산에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 4명의 미국 대통령을 조각한 작업은 1927년 시작해 14년 만에 완성됐다.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중앙포토]
미국판 ‘우공이산(愚公離山·어리석은 노인이 끈기 하나로 산을 옮기다)’ 신화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의 거대한 돌산에서다. 이곳에 아메리칸 인디언인 수(Sioux)족의 한 분파인 오갈라 라코다 부족의 전사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1840년 무렵~1877)’의 조각상이 윤곽을 드러냈다고 로이터통신이 5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조각은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을 조각한 ‘러시모어 국립기념물’의 건너편 산에 있다. 크레이지 호스의 머리상은 높이가 27m로 러시모어의 미 대통령 머리상보다 9m나 높다. 전신상이 완성되면 높이 172m, 넓이 195m에 이르게 된다.
높이 27m 인디언 전사 얼굴 윤곽 ‘큰 바위 얼굴’ 맞은편에 세계 최대 규모로 조각 중인 인디언 전사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이 5일(현지시간) 모습을 드러냈다. 원주민들은 미 제7기병대와 맞붙어 대승을 거둔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크레이지 호스’ 조각가인 지올코스키 부부의 다정한 한때(1980년). 48년 남편 코작이 시작한 조각 작업은 82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부인 로스와 자녀들이 이어받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작업은 1948년 코작 지올코스키(Korczak Ziolkowski·1908~82)라는 폴란드계 조각가가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수족 성지인 블랙힐스 돌산에 백인 대통령 얼굴들을 조각하자 당시 추장이던 헨리 스탠딩 베어(Standing Bear·서 있는 곰)는 그 작업에 참가했던 코작에게 아메리칸 인디언 중에도 영웅이 있음을 조각으로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1939년 뉴욕 미술대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촉망받는 조각가였던 그는 19세기 백인 기병대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다 장렬하게 산화한 크레이지 호스에 매료돼 블랙힐스로 다시 향했다.
크레이지 호스
단돈 174달러를 들고 시작한 무모한 도전에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몰렸다. 그중에 루스 로스(Ruth Ross·85)라는 여대생도 끼어 있었다. 루스는 코작의 열정에 반해 열여덟 살 나이 차를 극복하고 50년 결혼했다. 그러곤 10명의 자녀를 키우며 코작을 내조했다. 82년 코작이 사망하자 루스는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유업을 물려받았다. 처음엔 비웃었던 미국 정부는 세월이 흐르며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 부분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자 몸이 달았다. 미 정부가 지원해주겠다고 나섰으나 루스는 거절했다. 원주민의 염원이 담긴 조각에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남편의 유지를 따른 것이다. 그동안 경비는 현장을 찾는 관광객으로부터 거둔 입장료와 기부로 충당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크레이지 호스 조각 현장은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그 덕에 2006년 시작한 기부 캠페인에서 1930만 달러를 모금했다.
그렇지만 크레이지호스가 언제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각 규모가 러시모어의 네 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제 얼굴과 전체 윤곽을 잡았을 뿐이다. 다음 단계는 말머리 조각이다. 루스는 “조각이 언제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끝내지 못하면 자식들이 뒤를 이을 것이고 그래도 완성하지 못하면 손자·손녀가 물려받아 언젠가는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1840년 무렵~1877)=19세기 북미대륙 중부에 거주하던 오갈라 라코다 부족의 족장 . 샤이엔 부족의 용맹한 족장이던 시팅불(Sitting Bull·앉아 있는 황소·1831년 무렵~1890) 등과 손잡고 1876년 6월 지금의 몬태나주 리틀빅혼에서 조지 커스터 대령이 이끌던 미 육군 제7기병대와 맞붙어 대승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