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24 선우정 논설위원)
맥아더의 중국 경시가 큰 대가를 치렀다
공포보다 경시가 더 비극적일 수 있다
상대가 잊을 때쯤 중국은 행동한다
대통령이 20일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했다.
인기가 한풀 꺾인 때라 의도가 궁금했는데 청와대의 설명이 있었다.
"안보에서 국민이 분열하지 않고 단합해야 한다는 신념이 반영됐다"고 했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신념을 드러냈다.
사드 논란을 지목해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은 영화를 통해 그 신념을 재확인한 듯하다.
감상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후편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생각했다.
감상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후편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생각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승리 뒤에는 북진과 후퇴, 공방과 교착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가 있다.
후편에선 주인공도 다르게 묘사될 듯하다.
중공군 개입을 무시한 오판은 맥아더 군인 인생의 최대 실책으로 남았다.
맥아더 평전을 쓴 윌리엄 맨체스터는 "수많은 사람이 그 대가를 생명으로 치렀다"고 했다.
물론 한국인이 대다수였다.
인천상륙작전만으로 맥아더는 '한국의 구세주'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실책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인천상륙작전만으로 맥아더는 '한국의 구세주'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실책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영화가 묘사한 대로 맥아더는 치밀한 백전노장이었다. 그런 장수가 왜 오판했을까.
6·25전쟁사를 읽으면서 해답을 찾았지만 쉽지 않다.
대개 '승리에 취해 현실을 못 보고 일을 그르친 승자의 저주' 정도로 넘어간다.
백악관도 똑같이 중공의 개입을 오판했는데 맥아더 혼자 뒤집어썼다는 주장도 있다.
얼마 전 뜻밖의 책에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얼마 전 뜻밖의 책에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서울대 남기정 교수가 쓴 '기지국가의 탄생', 일본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가 쓴 '쇼와 육군'이다.
이 책엔 미군이 태평양전쟁 패전 후 흩어진 일본군 참모를 6·25 직후 불러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한반도와 만주, 중국에서 수십년 동안 축적한 정보와 노하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책 '쇼와 육군'은 '일본군 참모가 작전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들에겐 아주 강한 선입관이 있었다. 중국을 업신여기는 태도다.
그들에겐 아주 강한 선입관이 있었다. 중국을 업신여기는 태도다.
장난 같은 도발로 만주를 빼앗고 본토 침략 후엔 순식간에 남방과 내륙까지 먹었으니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일제 장교들은 중국군을 "바보" "돼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섭게 변하던 또 다른 중국군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전쟁을 끝냈다.
이런 집단을 모아 전쟁 자문단으로 재조직한 이가 맥아더의 정보 참모 윌로비였다.
이런 집단을 모아 전쟁 자문단으로 재조직한 이가 맥아더의 정보 참모 윌로비였다.
투철한 반공주의자였던 윌로비는 당시 맥아더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었다.
일본의 전후 역사를 좌에서 우로 바꾼 이른바 '역(逆)코스' 정책을 주도한 거물이다.
맥아더는 정보를 그에게 의지했다. 맥아더의 오판은 그의 오판에서 비롯됐다. 왜 착각했을까.
일본 군부의 중국 멸시가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추론이지만 흥미로운 연구 과제인 듯하다.
6·25에 참전한 마셜 준장은 중공군을 '그림자 없는 유령'이라고 했다.
6·25에 참전한 마셜 준장은 중공군을 '그림자 없는 유령'이라고 했다.
백선엽 장군은 그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마성(魔聲)'이라고 했다.
중공군은 치밀한 군대였다. 싸울 상대와 피할 상대를 정확히 구분했다.
소련의 스파이를 통해 유엔군의 진로와 한계까지 꿰뚫고 있었다.
맥아더는 인해전술이 아니라 정보에 밀렸다.
키신저는 6·25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은 나라로 중공을 꼽는다.
전쟁을 통해 군사대국이자 아시아 혁명의 중심 지위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득실 모두 컸다. 국민이 생명을 잃었고 땅은 황폐해졌다.
한국은 득실 모두 컸다. 국민이 생명을 잃었고 땅은 황폐해졌다.
대신 미국의 질서에 들어가 평화와 번영을 얻었다.
전쟁의 고난은 후대의 풍요를 통해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중국 경시'의 결과만 따지면 한국은 틀림없이 최대 피해자다.
얻은 건 없고 잃은 것만 있다.
미·일의 선입관에 한국 국민은 고통이 더 커졌다.
한국과 중국에서 외교관을 지낸 미치가미 일본 공사가 쓴 책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에 이런 글이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외교관을 지낸 미치가미 일본 공사가 쓴 책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에 이런 글이 있다.
'한국은 중국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작게 보는 경향도 있다.'
지금 사드 문제로 중국을 보는 시각도 비슷하다.
한쪽에선 보복에 대한 공포와 비관론, 한쪽에선 자신과 낙관론이 펼쳐진다.
미치가미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중의 의미에서 한국은 중국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피해 의식과 비관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먼저 역학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위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상대를 납득시켜야 한다.
작년엔 '통일의 벗'처럼 중시하다가 올해는 '안보의 적'처럼 대하면 안 된다.
사드를 결정했다고 미·일에만 의존할 수 없는 게 한국의 지리적 위치다. 중국은 시간 축이 긴 나라다.
우리가 잊을 때 그들은 행동한다.
'중국 공포'보다 '중국 경시'가 훨씬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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