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8.21 손철주 미술평론가)
'황희 초상'…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84.2×57.8㎝, 조선 후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물감이 벗겨지고 바탕에 얼룩덜룩 때가 묻은 작품이다. 얼핏 보면 오래된 초상화 같다. 정작 그려진 시기는 조선 후기다. 다만 초상의 주인공은 그보다 훨씬 이전 사람이다. 복색으로 따져 15세기 무렵이 맞다. 담홍색 관복을 입었는데 깃의 너비가 좁고, 흉배가 없던 시절이라 서대(犀帶)만 둘렀다. 오사모(烏紗帽)도 이른 시기의 형태다. 윗부분이 낮고, 좌우 뿔의 폭이 좁으면서 아래로 처졌다. 누구인지 알려주는 붓글씨가 그림에 남아 있다. 몇 자 지워졌지만 호(號)가 있어 얼른 짐작된다. '방촌(尨村) 황선생'.
다름 아닌, 세종 시대 정치인 황희(黃喜·1363~1452)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상 자리에 머물면서 총명하고 너그러운 이미지로 명망이 높았던 그 양반이다. 황희 정승의 초상은 여러 점 있다. 모두 조선 후기에 그려진 모사본으로 비슷한 꼴인데, 이 초상은 그중에서도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두 손을 공손히 맞잡은 황희는 얼굴을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한쪽 귀만 보인다. 구레나룻이 무성하게 자랐는데, 안면에 살피듬이 적어 갸름하고 눈매에서 매우 지적인 인상을 풍긴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아흔 나이에도 글 내용을 촛불 비추듯 환히 알았다'는 소리를 들은 황희였다.
그는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냈다. 비결이 있었을까. 황희는 듣는 귀가 크게 생겼다. 그는 또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마침 초상화를 봐도 평담(平淡)한 낯빛이다. 임금은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늘 그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그래도 미리 의논했다는 소문이 궁궐의 담을 넘어가진 않았다. 그의 입이 납덩이였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초상은 코밑수염이 윗입술을 넌지시 가리게 그려졌다. 다만 그의 청빈(淸貧)은 실록에서도 엇갈린다. 권력 오래 잡으면서 결백하기가 참 어렵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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