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2016.10.05. 17:25
<상> 한국과학의 부끄러운 민낯, R&D예산비중 세계 최고 불구 기초과학엔 '쥐꼬리 투자',
제대로 된 실험실도 없어..인재육성 함께 인프라 확충을, 공무원들이 쥐락펴락..연구비용배정 체계도 뜯어고쳐야
올해로 일본이 3년 연속 노벨생리의학상 등 그동안 총 22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사이 한국은 116년 노벨상 역사상 과학 분야에서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중국도 지난해 처음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29%(86조원)로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로서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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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일선에서는 정부가 당장 돈벌이가 되는 분야에만 몰리고 기초과학 연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비판이 있다. 연구예산이 증가해도 반도체·통신 등 정보기술(IT) 분야에만 매달릴 뿐 응용·첨단기술의 토양인 기초과학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주목받자 정부가 ‘한국형 알파고’ 계획을 급조한 것이 단적인 예다. 유룡 교수는 “기초과학 투자를 늘리지 않고 노벨상을 바라는 것은 이미 20년 전 나온 AI 기술을 미리 키우지도 않고 당장 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R&D 예산 18조8,900억원 중 기초과학 예산은 1조2,081억원으로 6.4%에 불과해 40%가 넘는 미국과 비교해 턱없이 작다.
지난해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과학자 1,000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우선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기초과학계는 김연아의 후계자를 꿈꾸는 피겨스케이터들이 제대로 된 빙상장조차 없이 훈련하는 것과 같은 열악한 수준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투서 등 과도한 경쟁과 공무원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연구예산 배분 과정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기를 100m 달리기로 보고 접근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박배호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는 “과도한 경쟁과 줄서기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창의적이고 분야를 이끄는 연구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성실하게 의미 있는 연구를 해오고 있는 연구자들이 적절한 평가 및 선정 과정을 거친 후 중단 없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어야 연구생태계가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국책연구소·민간연구소·대학부설연구소 등 대학원생과 신진연구자들이 보람을 느끼며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게 해서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의과대로 몰리고 과학기술특성화대 졸업자들이 로스쿨과 의대로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에 따르면 지난 2011~2015학년도 5년간 서울과학고에서 의학계열로 진학한 비율은 20.5%로 졸업생 5명 중 1명에 이른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정보통신기술(ICT) 쪽으로 기운 인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경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국민의당)은 국정감사에서 2013년 3월 미래부 출범 시 실·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28명 중 과학기술부 출신은 11명(39%), ICT 출신 9명(32%),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외 7명(1명 공석)이었지만 2016년 현재 고위공무원 27명 중 과기부 출신은 8명(29%)으로 3명이 줄었고 ICT 출신은 4명이 늘어 13명(48%)이 됐다고 밝혔다. 김선영 교수는 “듬직한 나이의 중견 과학자들은 좌고우면할 것이 많고 진행 중인 과제의 동력에 함몰돼 결과에 충격과 감동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젊은이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뿐 아니라 모험적인 창의적 과제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룡 교수도 “새로운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혜연 연세대 교수는 “현존하는 과학계 우수인력들은 선진국에서 길러져 그들을 다시 대한민국 과학계가 가져다 쓰는 형식”이라며 “이제는 한국 과학계가 자생력 있게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2년 이래 13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 분자생물학실험실(LMB)이 연예산을 600억원 정도 쓰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은 창의적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맘 놓고 연구할 수 있는 기초과학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종용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이사장(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연구조직을 보면 여전히 연공서열과 학연을 따지고 연구 활동보다 정부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한 문서작업이나 공무원 응대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 같다”며 “단기성과 위주의 정량 평가는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떨어뜨리고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지적했다.
/권용민기자
[칼럼] '노벨상 강국' 일본에 대한 부러움과 부끄러움
노컷뉴스 2016.10.05. 16:51영광의 주인공은 오스미 요시노리(71)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다. 오스미 교수는 세포 내 노폐물을 세포 스스로 잡아먹는 오토파지 (Autophagy·자가포식) 현상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암과 퇴행성 질환, 파킨슨병 등의 치료제 개발에 활용된 그의 연구 성과는 50년 가깝게 자가포식 분야라는 한 우물만을 판 결과다.
이로써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5명(미국 국적 취득자 2명 포함)으로 늘었다.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4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이다.

특히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기초과학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 분야에서는 2001년 이후로만 16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고, 2014년 물리학상, 2015년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에 이은 2016년 생리의학상까지 3년 연속 수상이다.
기초과학분야에서 '노벨상 강국'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일본의 저력 앞에 우리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물론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해서 우리도 꼭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못 받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이유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도 지난해 생리의학상을 비롯해 역대 11차례(대만, 미국 국적 취득자 포함)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이 고작일 뿐 과학분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의 모습이다. 기초과학분야에서는 아예 후보자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창피한 수준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중은 4.15%로 G20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기초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실제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19조원 가운데 기초과학 연구과제에 배정된 비율은 6%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단독 정부 부처로 편제됐던 '과학기술부'가 사라진 지도 오래 됐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는 과학기술처가 부로 확대 승격됐고, 노무현 정부 때는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격상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과학기술부가 사라지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로 흡수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기술 입국을 위해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미래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냉철한 현실 진단과 구체적이고도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5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식의 즉흥적이고도 근시안적인 안목으로는 기초과학의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되기 까지에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오랜 관심과 지속적인 투자가 수반됐다. 1868년 메이지 유신 때부터 100년이 넘도록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계속된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기초과학을 홀대하고 단기적인 연구성과에 집착하는 과학계 풍토를 일신해야 하며, 젊은 과학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지원 체계를 조성해야 한다.
오스미 교수는 4일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벨상 상금(10억 3800만원)을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도 연속된 노벨상 수상의 쾌거를 다음 세대로 계승하자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노벨상에서 만큼은 앞서가도 한참 앞서가는 일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남의 잔치를 부러워하고 우리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도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CBS노컷뉴스 박종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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