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군대를 조직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구조와 성격을 결정하는 근본적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잘 알려진 예는 ‘갑옷 입은 기사(armored knight)’의 출현이 중세 서양에 미친 영향이다. 중세 초기 이란에서 고안된 중갑기병(cataphract)은 유목민들의 경기병을 막아내는 데 뛰어나서 널리 퍼졌고, 마침내 유럽에서 갑옷 입은 기사로 변모했다. 말과 갑옷 같은 기사의 장비는 큰 비용이 들었으므로 기사 계층은 사회적 잉여를 장악하면서 지배계급으로 자라났다. 이런 사정은 중세 봉건제의 출현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했다. 근세에 화기가 보급되자 기사 계급이 몰락했고, 봉건제도 따라서 무너졌다.
그래서 병역 체계를 개선하자는 제안은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발전해 왔으므로 현행 병역 체계가 사회의 구성 원리와 현실에 맞는지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군인은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사회적 동물은 전쟁을 하게 마련이어서 무사 계층을 만들어낸다. 개미와 흰개미 같은 곤충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큰 동물 가운데 사람과 침팬지만이 전쟁을 한다는 사실은 인류가 독자적 종으로 진화하기 전부터 개인들이 군인 노릇을 해 왔음을 가리킨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패를 지어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우리 마음이 다듬어진 환경을 보여준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분업이 뚜렷해지자 직업군인이 나타났다. 유사시에만 모두 무기를 들고 나섰다. 역사적으로 군대는 지원자로 이뤄지는 것이 상례였고 비상시에만 징집병이 더해졌다. 어느 군대에서나 장교와 부사관은 직업 군인이었고, 특수한 기술이나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병과들도 지원자로 채워졌다. 병력의 다수를 이루는 보병이 주로 전시에 징집병으로 이뤄졌다. 부족한 병력은 때로 외국인 지원병으로 메워졌는데, 이들은 용병이라 불렸다.
따라서 우리 병역 체계를 논의할 때 징병과 모병을 대립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색하다. 국군은 지원병이 근간을 이루고 실질적으로 육군 전투병과만 징집병으로 채워진다. 자연히 징병을 줄이고 모병을 늘리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어야 논의가 생산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