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지 8개월이 되어 갑니다. 일본에 오면 한국보다 술자리가 좀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만큼 줄지는 않더군요. 일본 술자리에서 제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역시 맥주입니다. 일본 맥주가 우리나라 맥주보다 맛있다는 평가도 있는데다가 제가 개인적으로 맥주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맥주가 맛있다고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많이 맥주를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맥주소비량은 비슷합니다. 일본 맥주회사 '기린'에 따르면 일본인이 연간 42.6L(세계 51위), 한국인이 좀 더 많은 45.8L(45위)를 소비합니다.
저도 우리나라 맥주보다 일본 맥주가 조금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맥주가 더 맛있는 이유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일본 맥주의 맥아 함량이 한국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글이 많더군요. 이밖에 제조 공법 상의 차이를 설명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몇 차례의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국산 맥주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맥주들의 맛이 형편없는 걸까요?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맥주의 맛은 도대체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걸까요?
마시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에비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맥주 거품을 유지하기 위해 맥주를 마실 때는 윗입술로 거품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고 마시라고 하네요.
그런데, 정말 거품만 중요할까요? 아닙니다. 맛있는 맥주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맥주의 신선도와 술집의 청결도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마시고 난 일본 맥주잔입니다. 이른바 맛있는 맥주의 상징이라는 거품 링이 생겼습니다.
이 링은 특정 맥주 브랜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맥주와 깨끗한 잔을 쓸 경우 흔히 나타나는 겁니다. 에비스 맥주 사이트에서는 1) 맥주잔이 깨끗하고, 2) 맥주가 적당히 차갑게 돼 있으면서 3) 거품을 유지하며 마시면 생긴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깨끗한 맥주잔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보니 이제 맥주 맛의 책임이 맥주 제조사에서 유통업체, 술집, 그리고 소비자에게로 넘어온 것 같은 느낌이군요. 그래도, 역시 맥주 제조사가 어떻게 마셔도 맛있는, 그런 맥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일본 맥주가 맛있는 이유, 마지막은 치열한 경쟁입니다. 지난해 제가 일본 '슈퍼마켓쇼'라는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크래프트 비어들을 맛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정말 다채롭죠.
일본에서 크래프트 비어를 만드는 회사들은 주로 지역 맥주회사들입니다. 지난달 28일 일본 지역맥주사 동향 보고서가 발표됐는데요, 대기업 맥주사 5곳의 출하량이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지역 맥주제조사 200여 곳의 출하량이 꾸준히 늘어 전체 맥주 출하량은 오히려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올해 1-8월 가장 많은 출하량를 기록한 지역맥주는 니가타현의 에치고 맥주입니다. 그런데, 출하량은 1981㎘(킬로리터)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맥주사가 연간 수십만 ㎘씩 생산하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양입니다.
결국 일본 맥주의 맛은 전국 200여곳이 넘는 지역 맥주 회사들이 대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수많은 맥주 회사들이 더 좋은 재료, 더 좋은 제조법, 더 좋은 유통망, 더 좋은 술집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겁니다.
지역맥주사 동향 보고서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역 맥주사들에게 주력으로 파는 맥주의 맛을 물어봤더니 아래처럼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는 겁니다. 가로 축은 [시원하고 깔끔한 맛]<->[진하고 깊은 맛] 세로 축의 위는 [쓴 맛이 강함]<->아래는 [쓴 맛이 약함]입니다. 즉,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각 맥주회사들이 자기 나름의 상품으로 만족시키고 있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맥주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맥주를 좋아하는 애주가입니다. 맥주회사 분들이나 맥주 전문가 분들이 더 많은 정보와 더 좋은 의견을 갖고 계실 겁니다. 우리나라 맥주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아,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치는 것 아시죠?
최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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