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끔찍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한 자사고 진학 담당 교사의 말처럼 모두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원하는데 절대 닿을 수 없고 목적지에 가려면 (혼자만의 망상일지언정) 잔인한 고통을 견뎌야 하니 말이다.
한편으론 그깟 공부가 무슨 대수라고 애나 엄마나 학교나 죄다 이리 호들갑을 떠나 싶었지만 고교 3년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설령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이번엔 또 남들 눈에 번듯한 좋은 일자리를 구하느라 비슷한 지옥을 겪고, 그다음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돈과 권력을 좇아 이보다 더한 지옥을 견딜 수밖에 없다. 학벌·돈·권력만 바라보는 목적 지향적 사회에선 이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낙오자가 되고, 소수의 승자를 제외하곤 모두 패자가 되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목표나 경쟁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론 심한 경쟁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내의 과정을 겪으며 성취하기도 하거니와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만약 온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 어디에도 ‘나(의 행복)’는 없고 오로지 ‘남(과의 경쟁)’만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삶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인간의 본성은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구성원 대다수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 불행하게 산다”고 여긴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잘못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몽테뉴는 “올바른 목표를 잃으면 그릇된 목표에 열정을 쏟는다”며 목표가 없는 것보다 남의 시선에 휘둘려 원치도 않는 목표에 매달려 사는 게 더 문제라고 했다. 딱 지금 우리 얘기 같다. 지금이라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남의 잣대 말고 진짜 나만의 목표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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