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3 김윤덕 문화부 차장)
헬무트 자이들(45)씨가 독일 구두회사 가버(Gabor)에 입사한 건 열여섯 살 때다.
책보다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3년간 140개 신발 공정 과정을 익혔다.
직업교육제도 덕에 학업도 병행했다.
사교적이고 영어 실력 뛰어난 그에게 회사는 수출 업무를 맡겼다.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시장을 넓혀가던 때였다. 한 달이 멀다 하고 한국·중국·일본을 넘나드는
헬무트씨는 "가버는 내 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회사"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실제로 이 회사엔 부녀(父女), 모자(母子)가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출 파트의 소피는 기술 파트에서 32년간 일해온 아버지와 매일 아침 가버로 출근한다.
이 회사 슈 마이스터(Shoe Meister)인 미하엘씨가 글로벌 명품 기업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 이유도 인상깊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백만장자를 위한 구두가 아니라 백만인을 위한 구두니까요."
이 굳건한 자긍심이 중소기업 가버를 68년간 지탱해온 힘이다.
독일 남부 소도시에 있는 가버 본사에서 헬무트씨를 만난 날, 조선일보 1면(9월 8일자)엔 청년취업박람회 사진이 크게 실렸다.
대기업 부스는 대학생들로 북적이는데 중소기업 부스는 텅 빈 풍경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이 사진을 보여주자 헬무트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국과 수출대국 1·2위를 다투는 독일 경제는 '가버' 같은 중소기업들이 이끈다.
세계 100대 기업에 드는 독일 기업은 지멘스·폴크스바겐 등 4곳에 불과하다.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강소기업이 대다수로, 전 세계 강소기업의 절반 이상(1300여개)이 독일에 있다.
10월5일 압구정동 워킹온더클라우드 매장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컴포트 슈즈업체 가버의 아킴 가버가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지호 인턴기자
독일이 강소기업 육성에 성공한 원천은 기술 장인을 길러내는 독일식 직업교육에 있다. 세계금융위기에도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독일이 '유럽의 강자(强者)'로 우뚝 선 동력은 기술 장인들이 떠받쳐온 제조업이었다.
캐머런 전 영국 총리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하면서 배우는' 독일식 도제교육을 벤치마킹하러 나선 이유다.
우리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마이스터고를, 박근혜 대통령은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프로젝트를 지난해 도입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마이스터고 나오면 취업 잘된다 하니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내신이 상위 20% 이내여야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태반이다.
반면 실질적 기술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마이스터고·특성화고의 실습실을 들여다보니 내구연한 넘은 기계가 절반 이상이고 37년 된 밀링머신을 고쳐 쓰는
학교도 있다는 지적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이다. 독일은 현장실습에 기반한 직업교육을 기업이 주도한다.
우리 기업은 정부가 하라니 마지못해서 한다. "경영난에 웬 고등학생 교육이냐"며 불평한다.
고용의 질도 낮다. 3~4년 견습생 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독일과 달리 우린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인력난도 대학생들만 탓할 수 없다.
대학생 10명 중 8명은 중소기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잡코리아 2016년 조사).
연봉보다 기업의 철학과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상당수였다.
사람 없다고 발 구를 게 아니라 인재를 키우고 영입할 묘안을 찾아야 한다.
직업교육만 제대로 활용해도 헬무트·미하엘 같은 충성스런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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