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2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인이 됐다. 대통령 없는 나라에 다시 살게 됐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무탈했던 과거 경험 덕분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기각으로 노 대통령이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63일 동안 역시 나라에 큰 변고는 생기지 않았다.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한 그때 ‘나라가 오히려 더 잘 돌아간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뒤 대통령 없는 나라, 영국에서 장기간 살아 보기도 했다. 내각책임제 국가의 총리가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과 맞먹는 존재일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은 금세 깨졌다. 총리는 수요일마다 의회에 나가 야당 의원들의 공격적 질의에 응했다. 학교 급식에 튀긴 음식을 그대로 넣을 것이냐, 빼빼 마른 모델이 광고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이냐 등 총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질문에도 일일이 답해야 했다. 정치적 라이벌인 런던 시장이 언론에 대고 총리를 비꼬는 무엄한 말을 연일 쏟아내면 총리는 한 번 더 꼬아 응수하고 넘어갔다. 그 이상의 대응 무기가 없는 듯했다. 수상 또는 총리로 번역되는 ‘Prime minister’는 문자 그대로 여러 각료 중에서 가장 높은 각료일 뿐이었다. 대통령 없는 이 나라, 브렉시트니 뭐니 해서 시끄럽기는 하지만 멀쩡하다. 포클랜드전, 걸프전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하는 전쟁마다 승리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미국의 ‘president’를 번역할 때였다. 왕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느낌을 담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상하이임시정부에서 최고지도자 직함으로 정착했다.
대통령이 없는 것 같은 시절을 맞으면서 대통령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의심해 본다. 번번이 비극적 결말을 맞는 대통령과 그 혼란 때문에 주기적으로 고통받는 국민들, 이제 지긋지긋한 역사의 반복을 끊을 때가 되지 않았나.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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