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앞바다에 배를 띄우고

바람아님 2016. 11. 5. 08:00

(조선일보 2016. 10. 15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이철원 일러스트기자)



[가슴으로 읽는 한시] 앞바다에 배를 띄우고

앞바다에 배를 띄우고


하씨네 집은 남쪽 포구에 깊숙이 꽂혀 있어

문밖에는 망망한 바닷물이 구름을 치고

저 멀리 가위로 자른 듯 펼쳐진 갈대밭은

저녁 바람 불어오면 일제히 뒤흔들리네.


갈대는 두 길보다 크게 자라서

일찍 핀 꽃은 옅게 희고 늦게 핀 꽃은 새하얀데

반은 솟고 반은 꺾어져 제방 따라 어지러운 갈대꽃이

사각사각 배로 다가와 얼굴을 스치고 가네.

南湖放舟


河家屋子揷湖濆(하가옥자삽호분) 

門外茫茫水拍雲(문외망망수박운)

極望葦梢平似剪(극망위초평사전) 

晩風回處一紛紜(만풍회처일분운)


蘆葦生成二丈强(노위생성이장강) 

早花虛白晩花蒼(조화허백만화창)

半披半折沿隄亂(반피반절연제란) 

瑟瑟舟前掠面長(슬슬주전약면장)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1770∼1835)가 1821년의 깊어가는 가을날 김해에서 썼다. 

앞바다 남호(南湖)에 배를 띄우려다가 낙동강 하구에 펼쳐진 풍경을 읊은 14수 가운데 

두 번째와 네 번째 시다.

 

구름까지 닿은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갈대밭은 장관을 이루며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다. 

갈대잎은 저물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며 수런대고, 

흰 갈대꽃은 갈대밭 사이로 배를 타고 미끄러져 가는 시인의 얼굴을 스치고 달아났다. 

저물녘 갈대밭의 장관을 보며 넋을 잃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