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11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지금의 암울함을 한국 사회가 재탄생하는 여명의 순간으로 승화해야
대통령은 권력을 내려놓고 與野 함께 거국중립내각 꾸려 안팎 위기 관리하는게 유일한 출구
천하가 불의(不義)로 신음하고 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오물 덩어리를 뒤집어썼다.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을 배반한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다.
그는 공화정의 근본인 공공성과 공정성을 망가뜨렸다.
밝은 대낮에 투명하게 처리해야 할 나랏일을 음험한 어둠 속에서 사사화(私事化)했다.
국민이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국가 공동체가 천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들의 약탈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기 마련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지금 폭로되지 않았다면 온 나라가 회복 불능으로 망가졌을 것이다.
대통령과 친박 세력은 또 다른 허수아비 지도자를 세워 정권을 재창출할 요량이었다.
그게 성공했더라면 최순실 도당(徒黨)이 더 활개 쳤을 터이다.
전대미문의 혼군(昏君)인 박 대통령 본인이 지시하고 협잡꾼들이 아귀(餓鬼)처럼 달라붙은 국정 유린이 공화국 전체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국망(國亡)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망국의 길을 온몸으로 거부하였다.
끝을 알기 어려운 거대 부패의 꼬리가 드러나자 즉각 범국민적 공개 추적을 시작했다.
공동체의 자기 정화 능력이 되살아나고 내부 고발자가 잇따랐다. 경이로운 우리 사회의 자기 회복력이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자유 언론이 열어젖히고 여론이 폭발시켰다.
사사건건 부딪치던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협력해 국정 농단의 뿌리로 육박해 들어갔다.
언론과 여론이 함께 거악(巨惡)을 붕괴시킨 보기 드문 한국적 공론 영역의 진경(珍景)이다.
지금의 암울함은 한국 사회가 재탄생하는 여명의 순간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국민주권의 힘을 통해서다.
민주공화국의 미래가 걸린 운명의 순간이다.
이화여대의 청춘들이 '느린 민주주의'로 먼저 공화정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광화문광장은 세대·지역·이념·성별의 경계를 넘어 수십만 자유 시민이 동참한 축제 현장이었다.
서울 도심과 전국 곳곳을 밝힌 비폭력 촛불의 바다는 세계 정치사의 기적이다.
공화국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웅변하는 한국 시민의 압도적 존재 증명이다.
공화(共和)의 화룡점정(�龍點睛)을 찍는 시민 참여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된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의 대장정은 이제 막 출발했을 뿐이다. 공화정으로 가는 길엔 장애물이 가득하다.
참된 공화정의 길은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최대 급선무는 민주공화국의 적(敵)과 동지를 칼같이 나누어 적들을 징치(懲治)하는 일이다.
바로 거기서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정치가 시작한다.
평등한 자유 시민의 나라인 공화국을 정면에서 거부하는 자들은 국가의 공적(公敵)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국민주권을 부인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국적(國賊)이다.
최순실 일당과 문고리 3인방, 안종범 전 수석은 국가의 도적들이다.
지상 최악의 반(反)공화국적 국가이자 나라 같지 않은 나라인 북한까지 최순실 게이트를 희롱하면서
자기네 '지도자 복(福)'을 자랑할 때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최순실 도당의 도적질을 묵인했거나 그 일원으로서 하늘을 찌른 권세를 누린 혐의가 짙다.
그게 사실로 판명된다면 우병우는 법치국가를 무너뜨린 법비(法匪) 집단의 수괴(首魁)로 단죄되어야 한다.
정치 세력으로서 친박도 공화정의 적이다.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봉건시대로 퇴행시키려 한 집단을 퇴출시키는 게 역사의 순리다.
살아있는 권력 앞엔 비굴하고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 정치 검찰은 민주공화국의 디딤돌이기는커녕 걸림돌이다.
정치권력과 부당 거래 하면서 시장 질서를 우롱한 대기업 집단도 공화정을 위협한다.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은 헛된 권력에 집착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는 걸 막기 위해 개헌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책임 총리제에도 함정이 숨어 있다. 대통령과 총리의 이중 권력은 국정 혼란만 부추길 것이다.
국민을 능멸한 대가로 국민에게 경멸받게 된 대통령의 선택 여지는 거의 없다는 진실에 박 대통령은 직면해야 한다.
비상시국을 틈타 특정 야당이 정권을 잡은 양 설치는 것도 초(超)헌법적 사태며 참람(僭濫)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고 여야가 함께 진정한 거국중립내각을 꾸려 안팎의 위기를 관리하는 게 유일한 출구다.
박 대통령에겐 그것이 '아버지 박정희'의 이름과 국민의 극진했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다. 부
디 박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의 적으로 타락하는 최악의 길로 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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