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우리끼리 노래방에선 최고로 꼽히는 친구가 오디션에 도전했는데 본선에도 못 갔다. 나도 학창 시절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노래도 춤도 형편없어 일찍이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 경력 7년차, 이제 내 눈에도 웬만큼은 보인다. 외모가 좋고 노래를 잘하는 것만으론 합격의 카드를 얻기 어렵다. 준수한 외모나 최강고음으로 통과하는 건 옛날 말이다. 실력자가 워낙 많다 보니 ‘만화를 찢고 나온’ 외모든 ‘공기반 소리반’ 음색이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며칠 전 ‘K팝 스타’엔 18세 소녀가 등장했다. 인형 같은 외모에 매력적인 음색이었다. 역시나 3명의 심사위원 중 2명이 합격을 줬다. 그런데 가수 박진영은 혹평했다. “노래하는 기계인 줄 알았다. 말하는 것 같지 않아서 이야기가 안 팔린다”는 거였다. 진심을 담은 자기 이야기가 없으면 이래저래 ‘톱텐(최종 후보 10인)’은 안 된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에게 이번 촛불집회는 일종의 오디션이었다. 역사의 현장에 누가 나와서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기대하고 지켜봤다. 적어도 촛불집회 현장에서 느낀 민심은 싸했다. 청계광장에 차려진 정당 천막에 촛불 민심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톱텐’은커녕 합격점을 받은 사람조차 없었다. 오히려 “박근혜 찍은 노인네들 정신차려야 한다”는 송파 할머니의 ‘사이다 발언’에 눈이 갔다.
이유가 뭘까. 대선주자들은 오디션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서로 눈치를 보다 막판에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와야 하니까 나오는 것처럼. 출발부터 점수가 깎였다. 내용도 부실했다. 뻔한 얼굴인데, 수없이 들어본 노래에 새로운 것 없는 음색이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이미 수준 높은 심사위원이 됐다. 그간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오디션만 여섯 번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도,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사람도 뽑아봤다. 더 이상 쉽게 마음을 줄 리 없단 얘기다.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말이 전부라면 안 나오는 게 맞다. 누가 불러도 그만큼은 부른다.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오디션을 열 필요가 없다. 개인으로 조용히 왔다가 함께 외치고 돌아가면 될 일이다. 3일 촛불집회에 정치권은 또 총출동한다고 선언했다. 나오려면 치열한 반성, 정확한 분석, 명쾌한 해법 중 하나라도 들고 나왔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사실 하나도 안 반갑다.
김 혜 미 JTBC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