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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태극기 집회'

바람아님 2016. 12. 12. 08:25
(조선일보 2016.12.12 선우정 논설위원)
대선 주자도 없다. 유명 가수도 찾지 않는다. 언론 반응도 차갑다. 기껏해야 '촛불'을 막으려는 '맞불'로 소개한다. 
기운과 응원이 달리니 촛불이 청와대 100m까지 접근하는 동안에도 맞불은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넘지 못했다. 
최순실 사건 이후 이들이 대규모 집회를 처음 연 건 지난달 19일이다. 4차 촛불 집회 때였다. 
그들은 '태극기 집회'라고 했다. 
인터넷에선 여기서 나온 '계엄령' '빨갱이' 등 자극적인 주장만 부각됐다.

▶여론조사상으로 대통령 지지자는 '5%'에 불과하다. 이 '5%'만큼 만만한 조롱 대상이 없다. 
촛불 민심(民心)은 질서 있는 퇴진에서 하야, 하야에서 탄핵, 다시 탄핵에서 즉각 하야와 구속으로 바뀌어 간다. 
"이런 일로 대통령 탄핵하는 건 너무하다"는 이견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탄핵 반대쪽에도 합리적인 의견이 있었다. 억측이 사실로 여겨지는 현상에 대한 이의 제기는 경청해야 했다. 
굿판, 성형수술 등으로 변해가는 '세월호 7시간' 주장, 어떤 중년 남자가 심야에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다는 주장…. 
대통령을 감쌀 생각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추락하는 나라 위신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맞불 시위대는 야당엔 기대도 없으니 실망도 없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 아첨하던 여당 인사들의 변신엔 역겨움을 느낀다고 한다. 
최순실 국정농락을 파헤치는 언론에 대한 반감도 크다고 한다. 
본질과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보도의 홍수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이들이 서울 청계천과 대학로에서 연 집회는 이전 것들과 달랐다.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다. 
청년과 중년도 다수 참여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용돈 받은 노인들의 관제(管制) 데모'란 조롱이 쑥 들어갔다. 
적어도 그날 하루 청계천의 분노는 광화문의 환희에 뒤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완전하고 잘못도 저질렀지만 탄핵까지 간 건 너무하다고 했다.

▶국회의 탄핵 가결 직후 인터넷 공간에 헌법재판소 탄핵에 찬반 의사를 밝히는 사이트가 생겼다. 
어제 들어가 보니 뜻밖에 '탄핵 반대'가 우세했다. 
운영자가 조직 투표를 의심한 모양이다. 
어느덧 사이트에는 '반대' 단추가 사라지고 '찬성' 단추만 남았다. 
그러다 사이트 자체를 폐쇄시켰다. 이러면서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여론의 흐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 추이도 지금 추세가 이어질 듯하다. 
특검 수사로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더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존중돼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이해를 돕기위한 연관된 글]

이싸이트는 탄핵여론 선동하려던 "치어업헌재(cheeruphunjae)"라는 싸이트로 평소에 김용민, 김어준, 정봉주 관련내용들만 다루는"팟빵"과 주소가 일치하고 있어 누가 만든 싸이트인지  말안해도 뻔하다.
그들은 탄핵반대 여론이 높아 지자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어 싸이트를 폐쇄 하였다.일부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약 18만명이 참여하자 51% vs 49%가 되었다.

● 그런데 문제는 이때 이후로 발생하였다.

온라안 투표의 질문을 변경한 것이다.

처음에 찬성과 반대를 동시에 묻던 것을 . 탄핵을 찬성하는지 한가지만 물은 것이다.

변경한 질문 : 바보스런 설문조사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질문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은 원천적으로 참여를 할 수 없도록 변경한 것이다.

스스로가 처음부터  불순한 동기의 여론조사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치어업 헌재 관계자는 한겨레신문을 통해, 말도 안되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 놓았다.


"10일 문을 연 ‘치어업헌재’(www.cheeruphunjae.com) 사이트는 11일 저녁 7시께 “조직적인 공격 및 부정한 접근으로 투표와 청원기능이 무력화돼 사이트 운영을 중단한다”
한겨레신문 2016-12-11 14:15 수정 :2016-12-11 21:50
       

사이트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10일 저녁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이트 주소가 공유됐다.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트래픽 공격이 들어오고 있다”며 “개인차원의 해킹이 아니라, 장비를 동원해 대규모로 트래픽 공격을 하고 있다.

    
   
  치어업헌재 사이트 운영을 중단한다는 안내문
  
[출처] 탄핵여론 선동하려던 "치어업헌재(cheeruphunjae)" 불리해지자 전격 중단?|작성자 GMW연합

상세한 내용을 보려면 관련 싸이트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크메르루주 [Khmer Rouge]>


1967년 결성된 크메르루주군은 베트남과 마지막 전쟁을 벌이던 시아누크가 70년 3월 소련을 방문하던 

사이 미국의 비호 아래 론 놀(Lon Nol)이 일으킨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게 되자, 

농촌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정부군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친미(親美) 우파 성향의 론 놀(Lon Nol) 정권과 5년간의 내전을 벌인 결과 1975년 4월 수도 프놈펜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는 3년 8개월의 통치기간 동안 

화폐 사용을 금지하고 지역 곳곳에 집단농장을 세워 도시민들을 수용하는 등 '노동자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킬링필드(Killing Fields)'사건으로 유명한 피의 숙청을 자행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170만 명의 지식인들과 반대파들이 처형, 아사(餓死) 등 끔찍한 방법으로 학살됐고 



이들의 통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회실험으로 기록됐다. 이후 1979년 베트남군과 이들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의 공격으로, 크메르루주는 전복됐다.


2003년 캄보디아 정부는 유엔과 공동으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크메르루주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전범재판소를 만드는 절차에 착수한 후, 2006년 7월 처음 재판부를 구성했다. 

이후 다시 2년 반 만인 지난 2009년 2월, 크메르루주 몰락 30년 만에 첫 재판이 시작됐으며, 

2010년 7월 악명 높았던 투올슬랭교도소의 카잉 구엑 에바브 소장에게 징역 35년형이 내려졌다. 

2011년 11월 21일에는 크메르루즈 공산정권 당시 노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 키우 삼판 

전 캄보디아 부총리 겸 국방장관, 이엥 사리 전 외교부 장관 및 그의 아내 이엥 티리트 사회부 장관 등 

킬링필드 주역 4인방의 전범재판이 시작됐다.


킬링필드(Killing Fields) :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인 크메르루주 군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뒤 1979년 베트남군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크메르루주 [Khmer Rouge] (시사상식사전, 박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