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지의 주인공은 둑을 따라서 늘어선 20여 그루의 왕버드나무이다. 아름드리 거목이면서 수형도 아름다워 봄이면 왕버드나무의 푸르름이 반곡지 전체를 짙푸르게 물들여 장관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령을 300년 정도라 말하고 있지만 반곡지를 1903년에 축조하였으니 아마도 그보다는 못한 150년 전후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정해 본다.
버드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약 30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물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못이나 저수지에 우람하게 자라는 대형 버드나무 대다수가 왕버드나무로 수몰된 지역에 물에 잠겨서도 잘 자란다.
반곡지에서는 누구나 저마다 숨겨놓은 거울을 꺼내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하늘 향해 곧게 자란 나무도, 제멋대로 휘어져 자란 나무도, 땅을 향해 손을 활처럼 내린 나무도, 모두 반곡지에서는 저마다 숨겨 놓은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본다. 푸르름을 잃고 황토색 능선을 따라 언뜻언뜻 길게 이어진 주변 산도, 반곡지를 품고도 남을 만큼 넒은 하늘도 반곡지에서는 저마다 숨겨놓은 거울을 꺼내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마음이 어지러운 듯한 나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벌린 채로 푸르름이 떨어져 나간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자신을 비추어 현재의 나와 진솔하게 대면한다. 찌푸린 구름도, 파란 하늘도, 그 색 그대로 반곡지에 숨겨놓은 그들만의 거울로 자신을 마주한다. 계절에 따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맨질맨질 해진 뚝방 위로 걷는 다정한 연인들도 반곡지의 거울에 비추어진 그들만의 사랑의 모습에 미소 짓는다.
봄의 고요 속에 새로운 생명의 움트는 소리, 여름 아이들의 놀이소리, 가을 낙엽 지는 소리를 층층이 쌓아 놓은 반곡지 수면 위로 겨울을 살포시 덮는다. 뒷산에서 내려온 고요가 마을에 슬며시 내려앉으며서 반곡지 안으로 녹아내린다. 아침이 지난 시간임에도 반곡지 주변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 고요함과 평온함을 반곡지는 자신만의 거울로 우리에게 비추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