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1.10 03:15
국내 정책 뒤집듯, 정치권의 무책임한 '위안부·사드 합의 파기론'
- 위안부 합의 깨면
"한국은 정권마다 골대 옮긴다" 日 주장이 국제사회에 설득력
중국·북한을 상대하는 미국은 韓日갈등땐 안보 전략 큰 차질
- 사드 배치 철회하면
미군이 방어용으로 들여오는 것
한국, 中과의 경제문제로 막으면 최악의 경우 주한미군 철수
중국에도 '압박 굴복' 선례 남겨
대다수 대선 주자가 한·일 위안부 합의(2015년) 재협상이나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합의를 깰 때는 그에 따를 외교적 부담도 생각해야 한다.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한·일 간 화해에는 중국의 팽창과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중재도 작용했었다. 또 일본을 움직일 만한 지렛대가 현재 우리에겐 미국 외엔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일부 대선 주자들은 한·미가 합의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합의도 깨자고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교는 국내 정책과 달리 상대가 있는 것"이라며 "일본과의 합의, 거기에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맺은 안보적 약속까지 동시에 깰 경우 그에 따른 안보·경제적 후폭풍도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선거만 생각하고 국가 운명이 걸릴 수도 있는 그런 문제점은 말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동맹·우방국과의 약속을 깨는 문제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 한·미 관계에도 영향
위안부 합의를 깰 경우, 1차적으로는 한·일 관계가 다시 냉각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관계가 회복되는 데 3년이 걸렸고, 그 재개의 핵심 조건이 위안부 합의였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2012년 352만명이던 일본 관광객은 2015년 반 토막(184만명)이 났다가, 그해 말 한·일 정상회담과 위안부 합의에 힘입어 작년 210만명(11월 말 현재)으로 반등했다"며 "합의가 파기되면 관광객을 시작으로 모든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이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은 시작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또 "위안부 문제에서 항상 수세였던 일본의 입지가 강화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해도 한국이 자꾸 또 요구한다" "한국은 정권마다 '골대'를 옮긴다"며 반발했다. 지금까진 이 같은 '골대론'의 설득력이 약했지만 한국이 합의를 깨면 국제사회에 '일본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발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연기까지 걸린 상황
일본과도 문제지만, 그 여파는 한·미 관계에 미칠 수 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 복원을 절실히 원하는 미국은 한·일 과거사 갈등을 안타까워했다"며 "겨우 한숨 돌렸는데 이를 다시 깨겠다고 하면 미국도 섭섭해할 것"이라고 했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위안부 합의를 깨면 중국에 한·미 간 사드 문제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사드 배치 연기·철회 문제 역시 대선 정국에 함께 걸려 있다.
미국은 사드 배치를 한·미 동맹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내적 상황 때문에 '한국 방위 목적'을 사드 배치 명분으로 앞세웠다. 하지만 안보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는 주한 미군과 한국군 등 한반도 전력(戰力) 보호가 목적"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군과 미군이 보유한 미사일 방어 체제로는 북한 노동미사일을 제대로 요격할 수 없다. 반면 북한은 조만간 노동미사일에 핵을 탑재할 수준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전망이다. 이 때문에 사드 배치가 시급한 측면이 있다. 이를 한국 측이 중국과의 '경제 문제'를 이유로 막는다면 미국에선 당장 "한반도 방어를 위한 미군과 한국군 목숨보다 중국과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얘기냐"고 나올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들은 말하고 있다.
◇한·미 동맹도 고려해야
실제로 사드 배치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했고, 오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동맹의 상징"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사드 배치를 재검토한다면 미국에선 '한·미 동맹 회의론'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 시절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놓고 주한 미군 철수 가능성을 거론한 것을 감안하면, 한·미의 사드 갈등이 격화할 경우 '주한 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당장 내년부터 본격화할 방위비 분담금 협상부터 난관이 예상된다. 지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는 얘기는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뜻"이라며 "정치인들이 그만한 전략과 대응책을 갖고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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