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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인기투표가 되면 망한다

바람아님 2017. 1. 27. 11:05

(조선일보 2017.01.27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최근 만난 한 중국인 기업가로부터

"선거가 아닌 중국식 지도자 선출 시스템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결코 최고 지도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그는 "중국이라면 박근혜 같은 이는 경쟁에서 진작 탈락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에서는 일선 행정에서 시작해 수십 년간 다양한 관문을 거치며 통치 역량을 검증받아야 최고 지도자 후보군에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40년간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16번의 결정적인 승진 기로에서 

탈락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국가주석에 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국민에게 최고 지도자를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중국에서 이런 말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니얼 벨 칭화대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그는 1인 1표 및 참여 확대라는 서구의 선거 방식에 회의를 표한다

캐나다 태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박사 출신인 그는 

"선거로 선출되는 지도자들의 자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현명하고 유능하고 공공 의식을 가진 지도자를 뽑는다는 

면에서 선거는 중국 모델보다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많은 선거에서 유권자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과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따라 표를 던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우리는 과연 중국보다 나은 지도자를 뽑고 있는가'라는 기사에서 

이런 벨 교수의 견해를 소개했다.


민주적 정통성을 결여한 중국 정치 체제를 옹호할 생각으로 이런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우리는 이번에 정말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나'라는 물음을 던져보려는 것이다. 

몇 년 전 가수 이승철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가요계 예비 스타를 뽑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할 때였다. 

이씨는 "오디션 프로의 성공 관건은 실력 좋은 참가자들이 끝까지 살아남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하는 참가자들이 중간에 떨어지면 시청률이 낮아지면서 인기투표가 돼요. 

그러면 골수 팬들만 남게 되면서 실력에 상관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참가자에게 몰표를 던지게 되죠." 

그는 "우리나라가 보수·진보로 나뉘어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


'인기투표가 되면 망한다'는 그의 말이 우리 대선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대니얼 벨이 말한 '선거의 비효율'을 이씨는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꿰뚫어 본 것이다. 

이씨의 말대로,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망가지기를 바라는 유권자가 많은 나라에서는 올바른 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 

그런 선거에서는 능력과 비전보다는 세(勢)에 의한 바람몰이나 포퓰리즘에 능한 후보가 득세하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면 괜한 걱정일까.


중국인들로부터 "우리나라에선 너희 같은 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체제까지도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중국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그런 미래를 피하려면, 실력과 비전을 갖춘 후보가 중도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막판까지 남아 승부를 벌일 수 있고, 

낙선해도 5년 뒤 더 큰 그릇이 돼 차기에 도전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더 냉철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