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오후여담까치설

바람아님 2017. 1. 25. 23:28
문화일보 2017.01.25 12:20

황성규 논설위원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로 유명한 ‘설날’은 1988년 85세에 작고한 윤극영 선생이 지은 동요다. 그런데 왜 설 하루 앞날, 섣달그믐을 까치설(날)이라고 했을까? 관련 설화가 있다. 신라 소지왕 때 일이다. 왕비가 한 승려와 내통해 왕을 시해하려 했지만, 왕은 까치·돼지·용·쥐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왕은 보은하기 위해 이들의 기념일을 정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쥐·돼지·용은 12지 동물이어서 따로 기념일이 필요 없었다. 결국 까치의 날만 정했는데, 그날이 설 바로 앞날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實話) 아닌 설화(說話)라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보다는 언어학자들의 어원 풀이에 귀가 솔깃해진다. 학자들은 섣달그믐(또는 동지)을 예전부터 작은설이라 한 점을 주목했다. 여기에서, 작다(小)는 뜻을 가진 옛말 ‘?’에 ‘설’이란 명사가 붙어 아치설→까치설이 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어사전에도 ‘아츠조금’이란 표제어가 있다. 조수(潮水) 간만의 차이로 따져 초이레와 스무이틀을 이르는 말이다. 아침에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바닷물이 가장 낮은 때이다. 북한 지역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지만, 일부 경기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 한다. 아치가 까치로 바뀐 것은, 그 뜻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이 음상(音相)이 비슷한 아치를 ‘가치’(까치의 중세 우리말)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까치는 반가운 손님의 내방을 알려주는 새. 그래서 아치설이 설날 이미지와 잘 맞는 까치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까치설 풍습 중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해지킴(수세·守歲), 빌린 물건 돌려주기와 빌린 돈 갚기가 있다. 먹다 남은 밥은 모두 먹어 없애며, 하던 바느질도 끝내어 해를 넘기지 않았다. 매사를 새해가 오기 전에 마무리 짓는 것이다. 또,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목욕을 함으로써 청결 유지와 건강관리에도 힘썼다. 저녁에는 조상과 일가 어른들께 묵은세배를 드렸다. 지난 한 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음양으로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다. 이처럼 귀성 가족이 모두 모이는 작은설, 까치설은 긴 문장의 마침표 같은 날이다.


까치설은 섣달그믐이고, 설날은 정월 초하루다. 흐르는 시간에 매듭이 있을까만, 굳이 까치설과 설날을 경계로 한 해를 구분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살이에 힘겨운 날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