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경제학
중국에서 반세기 전에 벌어진 문화대혁명과 한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간에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치권의 실패를 자본가에게 떠넘기고 이를 정치권력 장악에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중국 정부 발표로는 1500만 명, 후대 연구로는 4000만 명 이상까지도 기근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경제 회생 임무는 주자파(走資派)로 불린 류샤오치(劉少奇) 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총서기에게 맡겨졌다. 이들은 대기근의 30%가 자연재해, 70%가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소농을 부활하며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했다. 문혁이 일어나던 1965년에는 경제가 상당히 회복됐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불평등과 부정부패가 생겨났다.
로드릭 맥파커 하버드대 교수는 ‘마오의 마지막 혁명’에서 문혁의 뿌리를 마오쩌둥의 정치적 동기에서 찾는다. 당시는 소련에서 권력이 브레즈네프로 이동하면서 스탈린 비판이 공식 당론으로 채택됐을 때였다. 마오쩌둥은 대기근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스탈린과 같이 비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다. 마오쩌둥은 ‘계속혁명론’을 제기하며 홍위병을 동원해 주자파를 숙청했다. 맥파커는 문혁 기간에 3600만 명 가량이 숙청됐고, 많게는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산한다.
문화대혁명이 ‘주자파 원죄론’을 내세운 것처럼 경제민주화는 30년 내내 ‘재벌 원죄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주자파가 중국을 나쁘게 했다고 하기 어려운 것처럼 재벌이 ‘경제양극화’의 주범이라고 하긴 어렵다. 한국에서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크게 떠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이다. ‘재벌체제’는 그 전부터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990년대에는 오히려 분배가 개선됐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정리해고가 도입되고 비정규직 문제가 시작됐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한다면서 금융기관과 대기업 임원들의 보수가 껑충 뛰었다. 고임금을 주는 외국계 회사가 최고 직장으로 떠오른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느 통계를 보더라도 분배 지표는 1997년 이후 급격히 나빠졌다.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던 벤처 육성도 분배에서는 부정적이었다. 네이버, 카카오와 같이 새로운 기업(企業)을 탄생시켰다는 긍정적 성과는 있다. 그러나 원래 벤처기업은 20개 중 1개가 성공하면 성공이다. 실리콘밸리 모델이야말로 승자독식 체제다. ‘창업’을 지나치게 추앙하면서 실패자들이 양산됐다.
재벌은 당시 ‘개혁 대상’이었다. 한국은 “IMF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거쳤고, 30대 재벌 중 17개가 소멸했다. 분배가 나빠진 원인은, 주식시장 위주의 ‘구조조정’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IMF나 정책 당국에서 찾아야 한다. 대기업은 대부분 국제 경쟁에 성공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중소·중견 기업과의 격차 확대가 양극화라는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10년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중국은 더는 소모적 정쟁 없이 대약진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의 무능을 성공한 기업에 돌린다. 이번에도 거의 모든 대권 주자가 ‘경제민주화’를 공통분모로 삼아 표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기업인들 입장에서 한국은 ‘유전유죄(有錢有罪)’가 함부로 적용되는 나라이고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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