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옹을 우연히 만났다. 남녘 봄소식을 찾아 나선 길에서다. ‘수선화 천국’으로 이름난 공곶이를 방문했다. 수선화는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만개까지는 시간이 더 있어야 했다. 노인은 1969년부터 바닷가 산비탈 14만여㎡를 오직 호미와 삽, 곡괭이로 일궈왔다. 한 해 평균 20만~30만 명이 찾는, 수선화·동백·종려나무 등 50여 나무와 꽃이 어울리는 동산을 빚어냈다.
강옹은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돌을 고르고, 가지를 솎아냈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을 걸었다. “언제까지 일을 하실 건가요.” “해와 이별하는 날까지 해야지.” “좀 쉬시지 그러세요.” “우두커니 있으면 몸이 무거워져.” 그가 발 아래 모난 돌과 몽돌을 가리켰다. “내가 물어볼게, 같은 돌인데 왜 모양이 다를까.” “시간 때문이겠죠.” “시간이 흐른다고 다 동글동글해지나. 파도에 씻기고, 서로 부딪혔기 때문이지.”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노동으로 단련된 육체의 언어였다. “물이 돌을 깎은 거야. 힘이 대단하지.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해.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야지. 신세 한탄할 틈이 어디 있어. 지금까지 그런 마음으로 살았어.” 강옹은 태풍 얘기도 꺼냈다. “사실 농사에는 태풍이 좋지 않아. 식물에 염분이 날아들 수 있거든. 그런데 세상은 나만 사는 곳이 아니야. 태풍도 한번씩 불어줘야 해. 그래야 바다가 뒤집히고 물고기와 해초도 풍부해지거든. 재작년에는 태풍이 불지 않아 바다가 흉년이 됐어.”
노인이 유유히 낡은 집으로 들어갔다. 지난겨울 한바탕 불어온 정치 태풍이 떠올랐다. 현직 대통령 파면이란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 부패한 권력(돌)에 대한 시민(물)의 힘을 경험한 우리다. 태풍이 훑고 지나간 바다처럼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기를 소망한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우석(雨石)’이란 말을 쓴 적이 있다. 비를 품지 않는 돌처럼 타인의 은덕을 모르는 사람을 뜻하는 옛말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일부 불복 조짐이 그런 우석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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