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Why] [남정욱의 명랑笑說] 간첩의 '잠복 기간' 남정욱

바람아님 2017. 3. 12. 09:15

(조선일보 2017.03.11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남정욱의 명랑笑說]


빌리 브란트 前 서독 총리

수행비서가 동독 간첩

잠복기간이 무려 10년

김정남 암살한 리정철

4년간 조용히 때 기다려


빌리 브란트 하면 떠오르는 게 우중양슬 착지사과(雨中兩膝着地謝過)다.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비 오는데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사죄했다. 

당시 한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 12월 7일의 일이다.




이렇게 양심과 사죄와 화해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빌리 브란트이지만 그가 어떤 일로 총리에서 물러났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행비서가 동독의 간첩이었다. 서독 사회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동독이 간첩을 많이 보내는 거야 

전 국민 상식이었지만 정권의 핵심까지 접근할 줄은 몰랐다. 수행비서 귄터 기욤이 서독에 잠입한 게 1956년이다. 

10년 이상을 몸을 낮추고 당을 위해 충성하며 신임을 얻은 끝에 총리 비서까지 올라간 것이다. 

서독 정가는 혼란에 빠졌다. 대체 누굴 믿어야 하지.


귄터 기욤 이상으로 독일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인물이 또 있다. 

1967년 6월, 서독에서 시위 도중 한 대학생이 공안요원 총에 맞아 사망한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란의 팔레비 정권을 서독 정부가 환영한 일로 촉발된 시위였다.


한 발의 총탄, 한 대학생의 죽음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서독 운동권들은 '정권의 개'가 죄 없는 대학생을 사살했다며 난리를 쳤고 대규모 학생 시위가 이어졌다. 

이 시위가 사회 전 부문으로 확대된 게 독일 68운동이다. 

대학생이 죽은 지 42년 만인 2009년 이 공안요원 카를하인츠 쿠라스가 동독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위를 확대시키기 위해 일부러 대학생을 사살했던 것이다. 

사건 당시 법원은 총기 사용이 우발적이었다며 모든 불리한 증거와 증언을 묵살하고 쿠라스를 무죄 방면했다. 

우익 정권이 살인자를 싸고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아니었다. 

시위는 시위대로 확산시키고 자기편은 자기편대로 살린 일거양득 전술이었다. 

이럴 수가, 법원까지! 40년 만에 드러난 진실 앞에 독일 국민은 할 말을 잊었다. 

쿠라스는 1987년 이미 명예 퇴직했다.


기욤과 쿠라스의 잠복 기간은 10년이었다(물론 중간에 자잘한 간첩질은 했겠다). 

긴 호흡으로 갈 경우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얼마 전 남파 공작원 출신 김동식씨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간첩은 386 학생운동 지도부를 포섭하려던 인물로 유명하다). 

남한에 와서 벌인 포섭 공작 이야기다. 반체제 성향의 인사에게 접근해서 포섭한 뒤 바로 뭔가를 시킨다? 절대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회 활동을 중단하고 뒤로 빠지도록 한다. 

주목을 끌지 않도록 생활을 조심하면서 어지간한 조직이나 사람은 그를 건드릴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가도록 주문하는 게 

그의 공작이었다. 

그런 공작조가 1년이면 열 팀은 내려왔다고 한다. 얼마나 심고 돌아갔을까. 얼마나 쑥쑥 자라서 깊은 곳, 

높은 자리에 앉아 사태를 조망하고 있을까. 김정남을 암살한 리정철이 결정적 순간을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숨죽이고 있었던 

시간이 무려 4년이다. 하긴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나라와 달리 죽을 때까지 통치를 이어가는 북쪽 지배자의 입장에서

4년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은 과연 이 긴 호흡을 감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