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을 휩쓸고 간 지독한 더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겨울의 혹한을 예측했으나 올겨울 추위는 예년대비 무난한 수준을 유지하며 사붓이 물러갔다. 그 덕에 소한 지나 곡우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 매화 찾는 발걸음은 한결 수월해졌는데, 추위를 뚫고 나온 매화의 결기가 다소 약해진 것 같다는 상춘객의 볼멘소리 또한 슬그머니 흘러나온다. 아직 일교차가 큰 데다 꽃샘추위 여파가 남아있어 봄이 봄같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흐드러지게 핀 남쪽 동네 매화 소식이 낯선 나라 이야기마냥 어색하기만 하다.
춘설을 질투한 매화
매화의 꽃말은 '품격'인데, 사람 또한 이름대로 살며, 살아지는 것이 신기하다. 조선 영조 때 이름을 날린 평양기생 매화는 황해도 곡산 출신 어여쁜 소녀로, 빼어난 미색만큼이나 구슬픈 가야금 곡조,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시재(詩才)가 있었다. 기생의 삶이 본디 춤과 노래로 사대부의 유흥을 돋우고, 혹여 사랑에 빠진다 한들 소유는 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이 아닌가. 그녀는 당대 내로라하는 사대부들과 무수한 염문을 뿌렸고, 평안감사 유춘색 또한 그 중 한 명이었다.
꽃 중 꽃은 매화요, 매화가 아니면 꽃이 아니라며 달콤한 말로 매화의 마음을 빼앗은 유춘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젊고 어여쁜 기생 춘설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떠나갔다. 매화는 돌아오지 않을 그를 향해 시를 남겨 차오르는 분기와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을 '품격' 있는 문장으로 승화시켰다.
매화 옛 등걸에 봄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매화와 부처님 말씀
이 땅에 매화가 언제 처음 꽃 피웠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기록에는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24년(서기 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 는 구절이 처음으로 남아있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사천성으로 당나라 때 한반도에 들어온 뒤 삼국 전역에 걸쳐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꽃보다 그 열매를 약용으로 사용하던 중국의 영향으로 매실 재배를 위해 널리 퍼졌고, 경주 월지에서 출토된 신라 금도금 유물에선 당시 도금 과정에 매실산이 사용됐고, 이는 현대의 질산, 염산을 대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며 그 다양한 쓰임새가 알려진 바 있다.
『삼국유사』에는 뜻밖의 매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불교가 신라에 전파된 배경을 저자 일연이 빼어난 문장으로 표현했다.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으니
계림에 봄빛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구나
영리한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모례(毛禮)의 집 매화에 먼저 꽃을 피웠네
눈 덮인 금교와 계림은 아직 불법의 혜택이 닿지 않은 신라를 가리키는 말이며, 봄은 불법을, 그리고 봄의 신은 법신(부처의 몸)을 상징하고 있다. 모례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눌지왕 때 처음 신라 땅 모례의 집에 머물며 불도를 전했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 시조는 매화로 상징된 불법이 신라에 들어온 과정을 계절에 빗댄 은유적 문장으로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매화덕후 퇴계 이황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매화 사랑으로는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는 매화를 한 인격체로 대하며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 불렀고, 말 없는 그들을 벗 삼아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는데, 그 시들 중 91수를 모아 직접 '매화시첩'이란 시집을 남겼을 정도. 그에게 매화는 가까운 벗이자 은애하는 여인이었고, 자신이 조급하거나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늘 매화를 잊지 않아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저 매형(梅兄)에 물을 줘라" 는 당부였다.
한 송이가 등 돌려도 의심스런 일이거늘
어쩌자 드레드레 거꾸로만 피었는고
이러니 내 어쩌랴, 꽃 아래 와 섰나니
고개 들어야 송이송이 맘을 보여주는구나
꽃잎과 그 봉오리가 아래로 향하는 도수매(倒垂梅)를 보고 읊조린 퇴계의 심중엔 강제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신사의 품격’이 오롯이 스며있다. 마흔 여덟 나이에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를 연모하던 열여덟 관기 두향은 미색에도 아랑곳 않는 이 신사의 마음을 얻고저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그가 사랑하는 매화, 그 중서도 꽃잎의 빛깔이 희다 못해 푸름이 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올리고서야 그 마음을 얻고 곁에 머무를 수 있었는데, 열 달을 채 못 채우고 퇴계는 풍기군으로 임지를 옮겨 떠나되 두향의 매화는 도산으로 옮겨 그 인연을 간직했고, 두향은 수년 뒤 퇴계의 부음을 듣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시린 겨울이 반드시 끝나고 이내 봄이 찾아올 것이란 확신은 다 썩어 죽은듯한 고목에서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의 정신과 근기에 오롯이 담겨있어, 많은 사람들은 매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봄이 오는 줄 알았다. 매화는 스스로를 드러내 자랑하지 않아 조선의 선비들은 활짝 벌어진 매화보다 반쯤 오므린 것을 제일로 쳤는데, 붉고 화려한 홍매보단 백매를, 겹꽃 보다는 홑꽃 매화를 고상하다 한 다산의 평에서 드러나듯 매화는 스스로를 끌어안고 지그시 홀로 피어나 봄을 알린다.
그런 매화의 상태를 살펴 하나의 인격체로 대한 나머지 병든 자신의 모습을 보고 행여 매화가 상할까 분재를 다른 방으로 옮기라 했던 말년 퇴계의 부탁은 지독한 상사 속에 스민 ‘격’의 경지를 시사한다. 격물치지는 유학의 경전이 아닌 겨울의 끝자락, 극진했던 매화치의 삶에 있었다. 이른 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든 화려한 꽃들 사이로 아직 가시지 않은 매화의 은은한 암향은 지난겨울을 허투루 산 나의 오늘에 대한 점잖은 꾸짖음처럼 들려온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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