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08. 03:03
특별공격대라는 의미의 일본어에서 따온 말
원래 뜻과 다르게 쓰이는 일본말 잔재 너무 많아
어느 대선후보도 "독고다이" '고독한 특공대' 역할할까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니 20대 중반 손에 쥔 건 달랑 대학 졸업장 하나뿐이었다.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한심했는지 집안 어른 하나가 건설회사에 취직을 시켜줬다. 역시 세상은 집안이나 연줄이 중요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방점을 찍어보자면 '회사'가 아니라 '건설'이었다. 좋게 말해 현장 직원 그리고 우리가 보통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노가다'로 사회생활 스타트를 끊었다. 첫 임지가 의정부 산기슭에 있는 공사 현장이었는데 제일 먼저 배워야 했던 게 같이 일하는 인부들이 쓰는 용어였다. 절반 가까이 일본말이었다.
"아까렝가 치우고 빠루랑 요꼬 반네루 두 장만 가져와." "네?" 빨간 벽돌 치우고 노루발 못 빼기와 가로로 보강목(補强木)을 댄 목재 거푸집 패널 두 장을 가져오란 얘기였다. 인부들은 투덜거렸다. "어디서 저런 데모도를 보내서…." 또 일본말이었다. 보름 정도 지나서야 겨우 소통을 할 수 있었다. 한번 입에 붙으니까 거기에 해당하는 한국어보다 일본말이 먼저 떠올랐다. 식민 시대의 작가들이 일본어로 작품을 구상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건설회사 나와서 들어간 데가 영화판이었는데 거기도 만만치 않았다. 우다이 문구(헤드 카피)에 다찌마리(싸우는 장면)에 가이다마(배우 대역)에 아예 노트를 만들어 외워야 할 지경이었다. 뭐 꼭 그 두 업종뿐이겠는가. 언어 쇄국주의자 절대 아니지만 우리말의 일본어 잔재는 좀 심각하다.
독고다이라는 정체불명의 말이 있다. 네 글자라서 심지어 사자성어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다. 실제로 검색 창에 독고다이를 쳐봤더니 진짜로 '독고다이(獨固多異)'라는 한문이 뜬다. 홀로 굳게 무리와 섞이지 않는 인물이라는 뜻이란다. 그보다는 차라리 獨孤多利가 낫겠다. 고독하게 홀로 행동하며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인물. 짐작하셨겠지만 일본말이다. 특별공격대(特別攻擊隊)를 도쿠베쓰 고우케키다이라고 읽는데 이 중 앞의 두 글자, 뒤의 두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원래는 그 앞에 두 글자가 더 있다. 신풍(神風)이다.
원나라 5대 황제 세조는 일본을 먹어치우고 싶었다. 그래서 원군 1만5000명에 고려군 8000명을 섞어 일본 정벌을 떠난다. 연합군은 기세등등하게 규수 북부인 하카타만에 상륙했지만 태풍이 불어 이들이 타고 간 배 대부분이 가라앉고 세조는 눈물의 철군을 한다. 칠년 후 세조는 다시 일본 원정을 감행한다. 지금의 마산을 출발한 4만 동로군(東路軍)은 또다시 하카타만에 상륙했고 10만 대군을 실은 3500척의 함대는 동중국해를 건넌다. 이때도 원정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태풍이었다. 또 가라앉고 또 돌아온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을 살려준 그 태풍을 신이 불어 준 것이라는 의미에서 신풍이라고 불렀다.
신풍은 신푸라고 읽는데 일본어로 한자 읽는 방식인 요미가나에 서툴렀던 일본계 미국인 2세들이 '가미카제'라고 발음하면서 가미카제가 자살특공대의 대명사처럼 됐다. 우리는 앞의 신풍을 떼어내고 독고다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쓴다. 용례상 '마이 웨이'에 제일 가깝지 않나 싶다. 대선 주자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독고다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신문에서 그 말에 '단독 플레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달았다. 그 설명은 좀 아닌 것 같다. 하긴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 후보가 특공대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 같기는 하다. 바람이 불까.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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