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 하네다공항에서 출국하면서 출국장에 있는 우동집에 들렀다. 옆자리에 젊은 일본 연인이 들어와 마주앉았다. 서로 웃으면서 조금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음식을 주문하더니 이내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들고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무슨 싸움이라도 해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아주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얘기했으니까 말이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내내 그렇게 ‘둘이 마주앉아서 혼자’ 자기 영역에 있었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혼자 하는 게 점점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는 느낌이다. 스티브 잡스가 혁신한 스마트폰은 확실히 무슨 세계 하나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혼자서 광대한 세계와 소통하지만 정작 옆의 이웃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혼밥(혼자 밥 먹는 일),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여행하기) 등이 삶의 풍속도로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토론하거나 논의해서 결판낼 주제가 아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더불어 살게 돼 있다. 남에게서 고립되어 혼자 있는 것은 인류 문명사에서 형벌의 공통적 구조다. 유배 보내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제한하는 것 등 혼자 있게 강제하는 것은 모두 형벌이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류에게 찾아온 혼자 문화가 새로운 인류를 형성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상황이 나온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꼭 하나 있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짝이 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창조주가 하와를 만든다. 하와라는 히브리어의 뜻이 생명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가 좋다는 메시지가 창조 이야기의 심장이다. 사람이란 존재부터 시작해서 무릇 모든 생명 현상은 더불어 작동한다. 그렇게만 존재한다.
사람의 신체 구조를 보라. 모든 것이 이어져 있어 전체가 하나의 몸으로 존재한다.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구조가 또 신체와 뗄 수 없이 이어져 흐르며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크게 보면 지구의 생태 구조가 그렇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인류는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요인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람이 자연 환경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가를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 원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라는 공동체성을 전제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은 결코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의 큰 두 가지 과제인 개혁과 통합은 우리 사회가 더불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따로 살 거면 개혁도 필요 없고 통합도 의미 없다. 함께 살아야 하고 더불어만 생존이 가능하니까 적폐 청산도 필요하고 협치와 상생이 절절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사실 빤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과 단견이 빤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만든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하면 공감과 경청을 통한 공존과 상생이 당연히 모두에게 큰 이익이다. 독한 경쟁과 상극의 삶은 서로를 죽이고 끝내는 모두를 망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역사에 새로운 막이 올랐다. 지나간 막의 공연이 힘들고 슬펐다고 해도 새로 막이 오른 무대는 전 막의 이야기에 근거해서 전개되는 법이다. 역사의식이 그래서 필요하다. 역사는 배울 때만 길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비참한 실패는 역사의 망각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박근혜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랐으나 실패했다. 새 정부는 꼭 성공해야 한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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