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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몽마르트르

바람아님 2017. 5. 26. 11:21
한국경제 2017.05.25. 18:04


‘예술가의 고향’으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이곳에 오르면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몽마르트르는 1860년 파리에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포도밭으로 유명한 전원 지역이었다. 높은 물가와 비싼 임대료 탓에 도심에서 밀려난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몰려들면서 ‘예술의 성지(聖地)’로 탈바꿈했다.


몽마르트르의 중심은 ‘예술가의 광장’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테르트르 광장’. 사시사철 화가들로 북적인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판매하고,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도 그려준다. 광장 주변엔 술집과 카페, 댄스 홀 등이 즐비하다.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 툴루즈 로트렉, 빈센트 반 고흐와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 등도 이곳의 술집을 전전하며 예술을 논했다. 1889년 10월 몽마르트르 한가운데에 문을 연 물랭 루주(Moulin Rouge)는 예술가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물랭 루주는 ‘붉은 풍차’란 뜻으로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가 열렸을 때 댄스 홀로 문을 열었다. 매혹적인 프렌치 캉캉 춤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1914년 화재로 전부 타버렸다. 1918년 뮤직 홀로 개축됐다.


몽마르트르는 프랑스어에서 산을 뜻하는 ‘몽(Mont)’과 순교자를 뜻하는 ‘마르트르(Martre)’의 합성어다. 해발 130m 정도에 불과해 ‘순교자의 언덕’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어원이 나타내듯 초기 기독교 신도들을 처형하던 곳이었다. 주변엔 유서 깊은 성당이 두 곳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8㎞ 정도 떨어진 곳엔 ‘생드니 성당’이 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60여 년 전인 AD 275년, 로마군에 의해 참수된 생 드니 신부가 자신의 목을 들고 이곳까지 걸어와서 숨을 거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한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자리잡은 ‘사크레퀘르 성당’. 생 드니 신부가 목을 들고 있는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비잔틴 양식의 거대한 돔으로 유명한 이 성당은 프랑스인에겐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인들이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성금을 모아 건축했다.


서울시가 25일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공중 공원으로 탈바꿈한 ‘서울로7017’ 주변 중림동을 ‘한국의 몽마르트르’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조선 후기 천주교 순교 역사를 간직한 서소문공원과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 등을 묶어 ‘중림동 역사문화탐방로(1.5㎞)’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유서 깊은 이곳이 파리 몽마르트르처럼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가 되길 기대해본다.


김태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