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08.07. 02:56
지도자의 헌신이 미래 바꿔
양당제는 발전 가로막는 깡패
다당제 씨앗 선거법으로 살려야
나 아니면 안 된다면 헌 정치
내가 아니라도 나라는 바뀐다
그는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당했다. 시바 료타로는 소설 『료마가 간다』에서 그를 자리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그렸다. 일본을 하나로 만들고, 미래를 위해 문을 열고,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달렸을 뿐이다.
개화기 불과 한 세대에 일본과 한국의 운명은 너무나 크게 갈렸다. 당시 일본에도 탐욕과 음모가 넘쳤다. 하지만 지도자 몇 사람의 헌신이 공동체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역사의 고비다. 19세기 말 못지않은 위기다.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전쟁’이란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땅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고, 250년도 안 된 역사에 200번이 넘는 전쟁을 치른 세계 최강의 나라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건 우리다. 그런데도 ‘운전석’론은 대리대사로부터 ‘the’와 ‘a’로 조롱당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이를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끌어낼 힘도 없다”고 토로했다. 밀양아리랑을 목청껏 부르지만 북한은 상대도 안 해 준다.
무역에 기대는 우리 경제가 편할 수 없다. 중국은 보복,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던져 놓았다. 일본과 감정의 골은 ‘적성국’보다 더 깊다. 인구절벽에 복지·에너지정책까지 불안감을 키운다. 일자리 불안에 젊은이는 철밥통만 찾는다. 4차 산업혁명은, 미래는 어디 있는가.
정치지도자들은 더 불안하다. 집권당은 적폐(積弊)를 청산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말이 너무 앞선다. 원칙과 절차와 말이 오락가락한다. 10년 전 일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미래는 안 보인다. 제1야당은 고립의 길로 걸어간다. 막말을 쏟아낸다. 세대와 지역, 극단적인 소수 지지층에 매달려 여당보다 경쟁 야당을 죽이려고 악을 쓴다. 모두 내년 6월 지방선거로 달려가 있다.
과거에도 제3당은 있었다. 그렇지만 선거 때마다 나오는 ‘떴다방’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런 기대가 흔들린다. 새로 등장한 군소 정당들이나 기득권 정당이나 도긴개긴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이 정리해 줄 것이라고 말했는데, 지금 그런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가.
국민의당 내부 갈등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치고받던 세력이 갈라섰는데, 여기서 또다시 싸운다. 정동영·천정배 의원은 안철수 전 대표가 대표 경선에 나서면 안 된다고 비난한다. 대선에서 패배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나서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제보 조작사건에 대해 후보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안 전 대표 측은 정·천 의원이 문재인 정부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우려한다. 중도노선을 포기하고 민주당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바른정당과의 협조나 제휴는 영영 어려워진다는 걱정도 있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도 비슷한 인식이다. 안철수 대표체제로 가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거꾸로 국민의당 호남 출신 의원들은 바른정당과 손을 잡으면 ‘햇볕정책’이 흔들려 선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런 걱정들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러려고 새 정치를 하겠다고 한 건가. 새 정치가 아니면 기득권 정당에 흡수되는 건 시간문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야말로 헌 정치다. 과거의 제3당은 모두 실패했다. 사카모토 료마처럼 나를 버려 대의(大義)만 이루겠다는 각오라야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조직이라면 이참에 버려야 한다. 선거를 위해, 표를 위해 억지로 동거한다면 기존 정당과 다를 게 뭔가. 갈 데가 없어 동거하는 건 비극이다.
통합을 왜 서두르나. 지방선거는 각자 기반 지역에서 경쟁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협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지층과 당내에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먼저다.
더 급한 것은 선거법이다. 이미 정치권에 공감대가 넓다. 그중에서도 가장 목이 마른 게 소수 정당이다. 당장 몸집을 키우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제도를 고치면 내가 아니라도 나라는 바뀐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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