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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62] 대통령 발언의 막중함

바람아님 2017. 8. 22. 07:14

(조선일보 2017.08.22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들에게 시저가 왕관을 차지하고 

독재를 할 것이 두려워 살해했다고 말해서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연이어 등장한 

안토니는 시저가 얼마나 로마 시민을 사랑했는가를 뜨거운 웅변으로 역설한다. 그러자 이번엔 로마 

시민들이 브루투스를 죽이라고 외친다. 지도자의 말이 역사의 물길을 바꾼 예는 무수히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들으면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후 촛불 혁명까지의 100년간 우리나라는 

하나의 국가로 기능하기는커녕 완전히 혼란의 수렁(북한이 말하는 '죽탕'?)에서 허우적거렸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기자 생활을 잠시 하며 수습기자 초봉으로 1만원을 받았던 1968년 겨울부터 수습기자 초봉이 100만원을 

넘기까지 반세기 동안 우리가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눈부신 성취가 그토록 하찮은 것이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들에게나,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 후에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괴담'으로 잠시 어지러웠지만) 처음부터 명백했고, 구조를 게을리한 관련자 등은 엄벌을 받았고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유족들이 비극의 그늘을 벗어나 생업 대열에 복귀하게 도와줘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은 37년 동안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제는 실종자, 피해자의 추가 신고도 그친 지 오랜데 언제까지 

상처를 파헤쳐야 할까? 이제는 더 이상 '한'의 포로가 되지 말고 치유와 화합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의 북핵 관련 인식과 발언 역시 너무도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자기 나라 국토, 국민이 핵 공격을 받을까 봐 속이 타들어 가는 미국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즉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미국의 북한 공격은 허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내 동생이 미쳐서 총을 난사하겠다고 날뛰고 있지만 동생이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 그 총을 뺏으려 하면 안 된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나는 발악하는 동생 앞에 내 자식들을 발가벗겨 내놓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주문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과 문 대통령이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 김정은 정권인가, 북한의 2000만 동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