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26 백영옥 소설가)
얼마 전,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연천 미라클'이라는 독립야구단을 보았다.
'고양 원더스'에 이은 두 번째 독립야구단이다.
선수 대부분은 프로구단에 지명받지 못했거나, 성적 부진, 부상 등의 이유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여자 선수도
있다. 그들은 야구가 자신을 밀어냈지만, 여전히 야구라는 라인 안쪽으로 자신의 삶을 힘겹게 밀어 넣고 있다.
독립야구단 선수들은 연봉 없이 한 달에 60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회비를 벌기 위해 이삿짐도 나르고 서빙도 한다.
빨래도 직접 하고, 장비도 직접 사야 한다. 좋은 환경에서 야구 하던 프로 때와는 다르다.
이들의 꿈은 프로 구단에 들어가는 것. 실제 프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큰 활약을 펼친 선수가 입단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프로야구 개막 후, 20년간 은퇴한 투수는 총 758명이다.
그중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126명,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이다.
통계가 의미하는 건 나머지 327명의 선수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났다는 것이다.
어렵게 프로야구에 입성해도 출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프로야구 원년에 출범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팀명과 달리 변변한 스타 선수가 없었다.
창단 첫해 성적은 5승 35패. 그들이 세운 승률 1할 2푼 5리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프로야구 역사상 최저승률이다.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거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한때 나는 버리고 '떠나는 삶'을 동경했었다. 하지만 이제 '버티는 삶'을 존경한다.
독립야구단의 이름이 '원더스'이거나 '미라클'인 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기적 말이다. 연천 미라클의 건투를 바란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사일언] 왼손 양치질 (0) | 2017.08.31 |
---|---|
[삶과 문화] 죽음의 진단명 (0) | 2017.08.28 |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이미 애프터 (0) | 2017.08.23 |
[이재무의 오솔길] 이별은 미의 창조 (0) | 2017.08.22 |
[삶과 문화] 클래스 (0) | 2017.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