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31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양치질을 할 때 평소 잘 안 쓰는 왼손으로 한 번씩 닦곤 한다.
이미 능수능란의 경지에 올라 있는 오른손만큼 자유롭지 않다
보니 마음처럼 왼손이 잘 움직여주지 않지만 그 어색한 손놀림을 일부러 느끼려 한다.
그 경험은 실기 배우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더디게 진행되는 그들의 성장 템포에 맞춰 가르쳐야 하는데 답답한 마음에 성급하게 다그치고 있는
나를 반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충치로 고생하다 그렇게 가기 싫어했던 치과를 결국 제 발로 가게 된 적이 있다.
양치질이 그리 규칙적이지 않았던 탓에 충치가 생긴 거라 말씀하시던 의사선생님의 온화한 충고가 잊히지 않는다.
특히 치료가 끝난 뒤 해 주신 말씀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평소 양치질을 자주 하진 않는 것에
비해 충치가 그리 심하진 않은 걸 보니 양치질 한번 할 때만큼은 엄청 열심히 하나 보네요."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양치질할 때마다 그분을 떠올린다.
덕분에 양치질을 발레만큼 열심히 하고 있고, 무엇을 할 때 조금 못하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하는 편이 되었다.
사소할지라도 누군가의 '칭찬'과 '인정'이 이리도 큰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하는 학생들에게도 이 방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강약을 잘 조절해서 물 흐르듯 리듬을 타며 추는 춤이 매력적으로 보이듯 칫솔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지치고 자신 없어 보이는 구부정한 자세로 거울 앞에 선 채 돌 사이에 낀 이끼를 솔로 긁어내려는 듯
온몸에 힘을 주고 해선 안 된다. 몸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관절을 이용해 힘을 빼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입안 구석구석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칫솔질하는 것이 최고의 양치법이 아닐까 싶다.
양치질도 춤도 인생도 결국 다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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