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21 우병현 디지털전략실장)
음성 인식 기술 발전하는데 한국어 인식은 아직도 멀어
삼성, 빅스비 개선으론 미흡… 정부·학계·업계가 협업해야
우병현 디지털전략실장
매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는 그해 후반기 전자제품 트렌드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리다.
올 9월 초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아마존의 음성 인식 기술인 알렉사(Alexa)다.
LG전자는 알렉사를 장착한 냉장고·TV·잔디깎이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보쉬는 알렉사로 제어할 수 있는 로봇 청소기, 야외 감시용 카메라를 들고나와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8부터 선보인 빅스비(Bixby)를 내세워 알렉사의 독주를 견제했다.
삼성전자는 TV·냉장고 등 자사 모든 제품에 빅스비를 장착해 알렉사 연합군과 맞설 계획이다.
IFA에서 확인한 이런 추세는 사람 음성으로 기계와 대화하는 음성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시대가 개막됐음을 보여준다.
SF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접했던 첨단 기술이 실제 생활 현장에 바짝 다가온 셈이다.
음성 UI는 크게 사람 말을 정확한 텍스트로 바꾸는 음성 인식과 그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자연어 처리로
구성된다. 또 각종 기능을 정확하게 작동시키는 앱 통제와 사람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음성 합성이 핵심이다.
음성 UI는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90년대부터 주목을 받았던 분야다.
최근 차세대 UI로 급부상한 것은 인공지능 관련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다. 음성 UI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 각축장이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더 정확하고 효율적인 언어 처리 인공지능 기술을 갖기 위해 인재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음성 UI는 집 거실, 자동차 안, 사무실 등 모든 장소의 모습을 확 바꿔놓을 것이다.
이미 미국 가정에서 아마존의 스마트 스피커인 에코에 대고 물건을 주문하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음성 UI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지만 한국 업계는 세계적 수준에 뒤처져 있다.
심지어 한국어 인식 수준조차 외국 업계에 뒤진다.
빅스비의 경우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인식하고,
'어머니가 죽을 드신다'를 '어머니 가죽을 드신다'로 인식한다.
소리에 해당하는 음절은 정확히 인식했지만, 형태소 분석에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빅스비의 각종 불완전성을 인력으로 처리하는 데 수천억원을 썼고,
결국 빅스비 개발 책임자를 바꾸고 근본적인 성능 개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들이 첨단 기술을 도입한 뒤,알고리즘 오류를 인력으로 해결한 사례가 꽤 많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은 2000년대 초반 자동차 안에서 음성으로 원하는 경로를 찾는 '네이트 드라이브'를 출시했다.
당시 음성 인식률이 낮아 고육지책으로 100여 명의 전화 상담원을 투입해 문제를 해결했다.
빅스비의 한국어 처리 문제 책임을 삼성전자에만 물을 수는 없다.
기계가 사람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게 하려면 똑똑한 알고리즘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알고리즘이 학습할 수 있는
공공 데이터가 풍부해야 한다. 사람이 책을 많이 읽어야 새로운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처럼 기계 역시
학습 데이터를 많이 봐야 똑똑해진다. 언어 처리에서 그런 데이터를 말뭉치라고 부르는데,
개별 기업이 저작권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말뭉치는 영어·일본어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의 학습에 가장 좋은 뉴스 콘텐츠부터 말뭉치로 만드는 공공사업을 크게 벌여야 한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한국어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네이버가 과감하게 내부 자료를 삼성전자와 같은 외부 기업에
개방하는 방안을 생각해봄 직하다.
전 세계를 상대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1억 명도 안 되는 한국어 시장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 뿌리를 둔 삼성전자가 한국어 처리 인공지능 기술을 제대로 못 만들면, 국내 소비자의 자존심이 상한다.
삼성전자가 이제라도 노트7 배터리 사고 때처럼 빅스비의 실상을 공개하고 정부·학계·업계에 협업을 요청해야 한다.
그래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인공지능 시대에도 계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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