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0.03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제빵사 5378명 직접 고용 명령… 19년간 한마디 없다 '날벼락'
기업이 쉽게 고용할 수 있어야 과감히 도전하고 일자리 늘려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이 정부 들어 진행되고 있는 기업에 대한 공세(攻勢) 가운데 단연 충격적인 것은 파리바게뜨 제빵사
불법 파견 판정이다. 협력업체 소속으로 가맹점에 파견된 제빵사를 불법 파견 근로자로 판정하고
본사가 그들 전원을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전체 직원이 5200명 남짓인 기업에 그보다 더 많은 5378명을 고용하라는 명령을 보면서 기업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파리바게뜨는 1999년부터 줄곧 협력업체 소속의 제빵사가 가맹점에 파견돼
일하는 방식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왔다. 정부는 지난 19년간 그런 방식에 대해 단 한 번의 경고조차 없다가,
이제 와서 '5378명 전원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부의 위엄이 추상같다고 말하기보다 "황당하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은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제빵사의 고용과 근무 실태를 살펴보았는지 모르지만, 그런 고용 관계가 딛고 있는 현실을
고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파리바게뜨가 악덕 기업이라서 제빵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은 게 아니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사업은
유행을 많이 탄다. 3400개에 달하는 가맹점 숫자가 확 줄어들 수 있다. 제빵 트렌드도 변하고 기술은 진보한다.
제빵사가 할 업무와 공정의 일부를 기계가 대신할 수도 있다. 현재는 제빵사가 5378명이 필요하지만 3000명만 있어도
충분할 때가 올 수도 있다.
현행 노동법은 기업이 이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게 만든다.
파리바게뜨 본사가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은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나머지 2300여 명을 만 60세 정년까지 회사가
끌어안으라는 말이다. 기업은 복지기관이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떠맡겨선 안 된다. 정부가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기업이 마치 화수분이라도 되는 양 기업 것 뺏어서 노동 쪽에 주려고 한다.
의적(義賊) 마인드로 경제 정책을 이끌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일거리가 없어졌거나 성과가 턱없이 부진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이 우후죽순 탄생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용을 주저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하자는 것은 '쉬운 해고'를 위한 것이 아니다. '쉬운 고용'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노동 개혁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지난 정권이 힘들게 추진시켜 놓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단번에 없던 일로 만들더니, 며칠 전에는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담은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지침 등 '양대 지침'도
폐기시켜 버렸다. 양대 지침은 박근혜 정부 노동 개혁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중장기 정책 과제로 제시한
'해고 요건 합리화' '취업규칙 변경 간소화'와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런 조치들은 노동시장에 이미 들어와 있는, 그것도 정규직으로 들어와 있는 '노동 기득권' '노동 철밥통' 세력만 더 강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천민 대접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과, 아예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 한 청년 실업자들에게는
장벽을 더 높이 쌓는 일이다. 노동 철밥통 세력의 기득권을 줄이지 않고 노동 약자들에게 줄 몫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현행 노동법하에서는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들이 필요 최소한의 인력 외에는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외주화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용역을 주거나 파견업체 인력을 받아서 해결하려 한다.
파리바게뜨 제빵사 문제의 근본 원인도 이것이다. 이 정부는 법이 만들어 놓은 노동시장의 이런 현실은 살피지 않는다.
'노동 기득권'의 양보를 받아내는, 어렵고 힘든 진짜 개혁은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는 날벼락처럼 '법'을 갖다 대면서 '전원 직접 고용'을 명령한다. 이런 식으로 법을 갖다 대는 것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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