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이맘 때 한국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서민들은 구조조정에 따른 실직의 고통 속으로 내몰렸고 결국 정부는 IMF(국제 통화기금)에 손을 벌렸다.
10년의 보수 정권이 몰락했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 꿈에서라도 되뇌고 싶지 않은 이름 'IMF'가 곳곳에서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꼭 20년 만에 그 불길한 예감이 다시 엄습해 오고 있다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각종 경제지표도 온통 '빨간불'이다.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내수는 여전히 소비절벽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가계부채도 1400조 원에 달한데다 가계 실질 소득도 감소세다.
그러나 청와대의 판단은 다른 모양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올해 경제성장률 3% 달성을 자신했다. 그러면서 IMF의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3%)를 근거로 들었다.
청와대의 판단이 옳았다고 입증이라도 하듯 IMF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또다시 0.2%포인트 올렸다. '것봐라, 우리가 맞았지 않냐'며 청와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3%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의 시각이다.
IMF가 3%로 전망치를 내놨을 때 대다수의 국내 경제 연구원들은 3%는 어렵다고 봤다.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내 민간연구소 전망치와 공신력 있는 IMF의 분석을 비교할 수 있겠냐"고 했다. 정치·경제정책을 해외 사례와 비교·분석할 때마다 진보세력들은 국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사대주의적 접근'이라며 비난해왔다. 그런데 그 진보세력들이 주축이 된 청와대가 국내 경제를 훤히 꿰고 있는 민간연구원의 분석을 IMF보다 신뢰할 수 없다는건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그건 좀 나은 편이라 해야 할까. 실업률 증가에 대한 참모들의 진단은 황당한 수준이다. 계절적 요인이 있거나 지금 나오는 지표들은 이전 정부 정책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차를 두고 예산이 집행되면 일자리 는 늘어날 거라고 '장담'했다. 안좋은 결과는 전 정부 탓이요, 지금은 정권 초기이므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저임금 인상과 건설·조선업 불황에 따라 하반기 고용 사정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듯 청와대 경제 참모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모양이다. 문제는 경제참모들이 분석하고 취사선택한 보고서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정보'로 전해진다는데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3%'를강조하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건실해졌다.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견해와 같았다.
참여정부 시절 '왕의 머리'로 불리던 김병준 교수는 저서 '대통령의 권력'에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왜곡만은 막고 싶었다. 그러나 참모들은 대통령이 듣고 싶어하는 것, 들어서 좋을 말만 했다"고 회고했다. 또 "권력이 클수록, 참모들이 한통속이 될수록 대통령의 눈과 귀는 점점 더 기능을 잃어갔다. 대통령을 위한다는 사람일수록 대통령을 '죽이는' 죽음의 연합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중국 최고의 지성으로 칭송받는 량치차오도 늘 때가 아직 안됐다고 이유를 대며 방관하고, 모든 것을 주변 상황의 탓으로 돌리는 신하를 경계하라 했다.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좋고, 고언은 귀에 거슬리나 치국에 좋다는 선인들의 지적은 언제나 유효하다.
3% 성장률 어쩌면 달성 가능할지 모른다. 세계 경제의 훈풍과 이로 인한 수출 호조가 3%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는 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이뤄낸 '과실'일지는 모를 일이다.
3%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청와대 참모들은 어떤 분석과 진단을,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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