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존재감 과시한 2017년
미 · 중 지정학적 갈등 역이용
核 · ICBM으로 동맹 분열 노려
‘노무현式 北核프레임’ 한계
文대통령, 안보 위기 직시해야
한 · 미 동맹으로 北문제 풀어야
2017년은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북한 김정은에게 끌려다닌 해다. 김정은은 1월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준비 마감 단계” 라고 선언한 뒤 7월 ‘화성-14형’, 11월 ‘화성-15형’으로 미국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2월엔 이복형 김정남을 치명적 독극물 VX로 살해했고, 9월엔 6차 핵실험도 강행했다. 호기심으로 북한 단체여행에 나섰던 20대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6월 코마 상태로 귀국했다가 사망했다. 미국의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 그룹이 매년 1월 발표하는 ‘글로
벌 리스크 톱 10’에 북한 문제가 올해 처음으로 올랐는데 관측이 정확했던 셈이다.
유라시아 그룹의 이언 브레머 회장은 이 발표 때 “2차대전 이후 정치적 혼란이 가장 극심한 해가 될 것”이라며 지정학적 후퇴기(geopolitical recession)라는 표현도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공세적 대국주의가 충돌하며 지정학적 갈등이 빈발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김정은은 이를 활용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성공했다. 미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성추문 폭로 여성들을 선정했는데, 김정은이 트럼프 등과 막판까지 유력 후보였다는 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김정은이 집권 6년 차인 올해 도발수위를 높이자 미국에 비상이 걸렸다. 미 랜드연구소는 북한의 도발 추이 분석 결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올 들어 체제 생존용 수준을 넘어섰다”고 결론 내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북한의 첫 ICBM급 ‘화성-14형’ 발사 후 “북한 목표가 체제 방어에서 미국 공격으로 바뀌었다”고 결론지었다. 김정일 시대 체제 방어 수단이던 북한의 핵·미사일이 대미 공격 수단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9월 뉴요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의 ICBM 개발 목적은 미국이 한국에서 손을 떼게 만든 뒤 제2차 한국전쟁의 길을 열기 위한 의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ICBM을 보유한 북한이 남침을 시도할 경우, 미국은 워싱턴이나 뉴욕이 공격당할 수 있다는 우려로 개입을 주저할 것이기 때문에 ICBM은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을 분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통해, 안 되면 군사 옵션이라도 동원해 ICBM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인사들도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올해 본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그 위기가 관리 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비상수단이라도 써야 할 정도로 긴급한 것이냐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안보책임자인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이 냉전 시대 소련 핵처럼 관리 가능하다고 보지만, 맥매스터 보좌관은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과거 노무현 시대의 ‘북핵 프레임’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11월 로스앤젤레스 방문 때 “북한의 핵·미사일은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는 억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리가 있다”고 말하자 ‘북한 대변인 같은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후폭풍이 컸다. 그래도 그때는 핵실험 전이고 ICBM도 없던 때다. 이후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했고 ICBM까지 개발했는데도 문 정부 인사들은 여전히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말이나, “북핵은 북·미 문제”라는 문 대통령의 주장은 노 전 대통령 발언의 변형일 뿐이다. 그러니 현격히 악화된 북핵 위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나 해법이 없다.
김정은은 이제 공개적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까지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북한이 왜 그런 주장을 하고, ICBM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는다. 그저 ‘북한의 핵·미사일은 대미 협상용’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언급만 옛 경전 외우듯 하며 미국에 대화만 촉구하고 있다. 북핵이 한국의 생존에 직접적 위협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미국은 전쟁 없이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문 정부가 변화한 현실에 기반을 둔 올바른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2018년은 한·미 동맹에서 최대 위기의 해이자, 한국 운명이 김정은의 위협에 인질로 잡히는 첫해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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