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朝鮮칼럼 The Column] '부자 만들기'와 반대로 가는 정부

바람아님 2017. 12. 31. 09:44

조선일보 2017.12.30. 03:12


"여러분, 부자 되세요"란 인사, 70년대엔 나라와 개인 모두 해당
최근 저성장 구도 굳어지면서 시장경제 근간 해치는 발상 퍼져
복지 위주 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더 많은 국민 부자로 살 수 있어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세밑이 되면서 주변은 새해 인사로 바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적 신년 덕담은 주로 건강이나 장수, 또는 복을 비는 것이었다. 하지만 20년 전 외환 위기를 계기로 새해맞이 대표 인사로 급부상한 게 있다. "새해 부자 되세요"가 그것인데, 어느 카드 회사가 광고 카피로 썼던 "여러분,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가 파생시킨 유행어다. 원래 중국인들은 '궁시파차이(恭喜發財)'라고 하여 이런 인사법에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의 새해 축원이 배금주의를 노골적으로 담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일이다. 이제는 이런 '부자 기원' 인사가 별로 어색하지도, 쑥스럽지도 않다.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2018년 무술년을 맞아 우리의 부자 운세는 어떨까? 내년은 이른바 '황금 개의 해'로서 '부자 되는 해'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선지 서민들의 살림이 올해보다 조금은 나아질 전망이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 출범에 따라 내년도 복지부 예산은 60조원대를 역사상 처음 넘길 참인데, 이는 올해 대비 11.4% 증가한 수치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6470원에서 7530원으로 높아지고 실업급여 1일 상한액은 5만원에서 6만원으로 인상된다. 9월부터는 65세 이상 노인 기초연금이 5만원 늘어나 25만원이 된다. 5세 미만 아동 대부분을 대상으로 매월 10만원씩 아동수당도 지급된다.


하지만 국가가 주는 이런 식의 각종 연금이나 수당이 국민들의 '부자 소원'을 충족하는 정공법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당장은 크고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사람이 부자로 일어서고 부자로 살아가는 당당한 사회다. 그런 만큼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복지 만능주의가 아니라 각 개인의 물적 토대를 키우고 각자의 자립 역량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분배주의 사회정책이 아닌 성장주의 경제정책은 언제 어디서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의 책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시대는 각별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이 자산 형성을 통한 '부자 되기'와 병행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가와 개인이 경제적으로 동반 성장을 경험한 것이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국민은 내 집 마련 기회를 발견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심각한 주거난 속에서도, 주택이 복지국가 모델에서처럼 공공재(公共財)로 공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신 그것은 매매를 전제로 한 시장재(市場財)로 제공되었고, 정부의 적극적 금융·세제 지원에 힘입어 총인구 상당수가 자기 집을 갖게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국민이 권위주의 체제에 순치되고 동화되는 대목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1987년 전후 격렬했던 좌경적 체제 변혁 운동 앞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켜낸 힘의 원천 또한 자가 소유 중산층의 확산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산 소유 구조의 극심한 왜곡과 편중을 목격하고 있다. 내 집 장만을 통해 부자로 입신할 기회도 점점 더 줄고 있다. 자가 점유율이 오랫동안 50~60%대에 정체돼 있는 가운데 주거 안정성은 사회 전반적으로 취약해지고 있다. 저성장 장기화로 현재 청년 세대는 당대에 자력으로 주택 소유자가 될 희망이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주택에 대한 관념 자체가 도치되고 전복(顚覆)되는 분위기다.


언제부턴가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담론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 정부가 '주거 복지 로드맵'을 발표할 때도 이 말이 앞부분에 등장했다. 주택은 자산 역할을 하기보다 주거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얼핏 솔깃한 이 표현에 내포된 이데올로기적 그림자다. 주택의 사회적 공유 및 주거의 공익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칠 수도 있는 발상이다.


현행 체제에서 집은 '사서(buy), 사는(live)'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자산 소유의 정당성과 가능성이 흔들리면 부자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대신 '큰 정부'의 복지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가운데, 가난하고 작은 개인들은 국가가 인도하는 '예종(隸從)의 길'에 손을 벌리고 서 있게 될지 모른다. 하이에크의 예측처럼 말이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꿈꾸는 미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 확실한 새해 소망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국민을 섬기겠다'며 집권한 현 정부는 거짓말을 하는 결과를 자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