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1.02. 01:50
남북대화 급물살 경계해야
대북 압박공조 이탈은 자살골
중국도 북한 핵 용납 못해
핵 보유 북에 자충수 될 것
예상대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대남(對南) 평화공세로 무술년 새해의 포문을 열었다. ‘핵 무력 완성’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발에서 대화로 국면 전환 카드를 던졌다. 단추만 누르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능력을 갖췄으니 이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선 여유와 호기마저 느껴졌다. 그는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하고,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군사대화 가능성도 열어뒀다.
김정은은 “지난해 핵 무력 완성으로 공화국은 되돌릴 수 없는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됐다”면서 “미국이 모험적 불장난을 할 수 없게 하는 강력한 억제력을 갖추게 됐다”고 강조했다. 남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이 됐으며, 그 지위는 ‘불가역적 지위’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김정은은 “다른 나라가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선제 핵 불사용(No First Use)’ 독트린까지 밝혔다. 핵보유국 선언에 이어 핵보유국 행세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자기 책상 위에 놓인 핵 단추만 누르면 미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핵미사일이 바로 날아간다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엄포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지난해 11월 말 화성-15형 미사일 고각 발사로 그 능력이 확인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니라는 반론도 많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정상 각도로 시험발사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는 데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탄두 제어 기술까지 보여주진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3년 정도의 여유가 아직 남았다는 분석도 있다. 만일 북한이 태평양의 망망대해로 IC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게 되면 미국은 군사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이는 한반도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국과 일본, 나아가 대만까지 자위적 핵무장에 나서는 최악의 사태를 미리 차단하려면 북한을 최대한 압박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다 보면 북한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 난민 유입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 핵무기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북한이 외치는 자주와 주체의 대상에는 중국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의 특사를 외면함으로써 베이징에 보낸 메시지가 바로 그것일 수 있다.
김정은의 평화공세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당국 간 대화 제의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이미 던져 놓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지와 한·미 연합훈련 연기나 조정을 맞바꾸는 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나아가선 안 된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 지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북한이 제풀에 무너지거나 제 발로 협상장에 나올 때까지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그 대오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 한·미·일에 중국까지 끌어들여 대북 압박의 고삐를 더욱 바짝 조여야 한다. 북한이 평화공세로 나온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같은 자살골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김정은은 루비콘강을 건넜다. 핵 무력이 북한 체제를 지키는 보검(寶劍)이 될지, 북한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 보유는 중국까지 적으로 돌리는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미·중 군사 당국 간 대화설을 김정은은 흘려들어선 안 된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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