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12.05. 01:41
중국 체제 과시 나선 시진핑
인류 운명공동체 실현 내세워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 도전장
한국 집권당 대표 초청해
특별 대우한 뜻 간과 말아야
시 주석은 120여 개국의 주요 정당 대표급 인사 460여 명을 초대해 ‘중국 공산당과 세계 정당 고위 대화’라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열었다. 19차 당대회를 계기로 ‘시황제(習皇帝)’로 등극한 시진핑이 당대회 결과를 널리 알리고, 중국 체제를 과시할 목적으로 공들여 준비한 행사다. 동남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제3세계 국가 정당 지도자가 다수를 차지한 이 행사에서 한국 집권당 대표의 참석은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추 대표는 시 주석이 14개국 대표와 함께한 포토 세션에 참가하고, 폐막일 전체회의 기조연설을 맡는 등 특별 대우를 받았다.
개막 연설에서 시 주석은 “중국은 외국의 발전 모델을 수입하지도, 중국 모델을 수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이 어떤 발전 단계에 이르더라도 패권을 추구하거나 팽창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동존이(求同存異)와 상호존중의 자세로 모든 나라를 긴밀하게 연결함으로써 지구를 조화로운 가족 같은 인류 운명공동체로 만들어 나가자고 역설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결합한 스마트파워를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결과다. ‘힘을 통한 평화’의 기치 아래 국무부 예산과 인력을 대폭 감축하면서 국방 예산은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은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임하면서 미국의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시 주석은 세계 정당 고위 대화 연설에서 ‘승자 독식’과 ‘근린 궁핍화’를 거론하며 “이러한 방식이 국가별 성장의 뿌리 자체를 훼손하고, 인류 전체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을 적시하진 않았지만 국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장하는 미국식 거버넌스에 대한 질타에 다름 아니다. 이번 행사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자 미국에 대한 체제 경쟁의 공식 선언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시 주석은 세계 정당 고위 대화를 제도화하고, 향후 5년간 1만5000명의 각국 정당 관계자를 초청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문제는 중국의 코가 석 자라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미국 수준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불평등과 양극화로 보면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게다가 중국은 급속히 ‘빅브러더 사회’로 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2000만 개에 달하는 감시카메라(CCTV)와 결합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수퍼컴퓨터의 성능과 수량에서 중국은 미국을 압도한다. 연산 능력 1~500위 수퍼컴퓨터 중 202대를 보유해 미국(143대)보다 훨씬 많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인 수퍼컴퓨터를 토대로 AI와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일자리를 잃은 중국인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그럴수록 중국은 인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곳곳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그렇다고 공산당 일당독재에 기반한 중국식 거버넌스가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국제사회가 순순히 따라줄지도 의문이다. 미·중 간 체제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의 처지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추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신시대의 설계사’인 시 주석이 주창한 ‘중국의 꿈’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큰 꿈에 취해 중국이 자신을 초대해 특별 대우한 의도를 간과한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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