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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100권 번역 목표, 새벽 3시부터 씨름"

바람아님 2018. 2. 17. 09:44

(조선일보 2018.02.15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진형준 前 한국문학번역원장, 은퇴 후 홀로 '세계문학전집' 편찬
작년 20권 출간, 50권분 작업 끝내


"돌이켜보면 내가 이 작업을 하려고 지난 50년 가까이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형준(66) 전(前)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요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총 100권)을 쓰면서 은퇴 이후 삶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청소년이 읽어야 할 세계문학 고전을 엄선해 홀로 축역(縮譯)하는 일이다.

한국 출판계에서 전례(前例) 없는 '1인 세계문학전집' 편찬인 셈이다.


"살림출판사에서 작년 9월 1차분 20권을 냈고 이미 50권 분량의 원고를 추가로 넘겼는데

앞으로 3년 내 100권을 완간할 겁니다." 2013년부터 3년간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지낸 그는 36년간 봉직해온

홍익대 불문과 교수직에서 작년 8월 정년 퇴임했다.

진형준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0년 전 기획했던 세계문학 고전 축역 작업을 정년 퇴임 이후 삶의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진형준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0년 전 기획했던 세계문학 고전 축역 작업을

정년 퇴임 이후 삶의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대학에서 제공의사를 밝힌 연구실이나 초빙 강의를 모두 사양했어요.

대신 매일 새벽 3시쯤 일어나 집이나 파주출판단지 작업실에서 고전(古典)들과 씨름하고 있지요."


진 전 원장은 전공인 프랑스 문학을 기본으로 영문학, 독문학, 러시아문학, 스페인문학, 중문학의 고전을 골라

축역한 뒤 해설을 쓰고 청소년 독자가 생각할 논술 주제를 제시해왔다.


그는 "내 작업은 원전의 축약(縮約)이 아닌 축역(縮譯)"이라며

"원본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뺄 것은 빼고 내가 다시 쓰는 작업"이라고 했다.

10년 전부터 기획했던 것을 미루다가 정년 퇴임 이후 삶의 목표로 세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야 하는 데 정작 읽힐 책이 없는 게 사실 아닌가요.

고전의 완역본을 읽으라고 하는데, 사실 해당 문학의 전공자도 제대로 읽기 어렵다고 봅니다.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전 5권)을 불문학과 출신 중 완역본으로 다 읽은 이가 얼마나 될까요."


그는 "서양 문학의 원류(源流)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려고 컬렉션 목록을 구성했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시작으로 그리스 비극을 거쳐 중세 유럽 문학에 들어갔다가

서양 근대 소설의 다양한 갈래를 맛보게 하는 방식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서양의 유명 작가들이다

'내 작품은 그것의 변형'이라고 하는 문학의 원류라는 점에서 꼭 읽어야 합니다.

명예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리아스'와 달리

'오디세이아'는 살아남기 위해 온갖 것을 경험하는 개인들의 스토리죠."


서양 문학의 정신이 '명예'와 '생존' 두 갈래로 크게 나뉜다는 얘기다.

그리스 비극을 21세기에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민주주의의 원칙인 대화의 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초기 그리스 비극은 배우 두 명이 등장해 서로 반대 입장을 대변했다.

관객은 연극을 보면서 그 토론에 참여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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