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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핵포기 준비 안됐다…히틀러식 위장 평화 경계를"

바람아님 2018. 3. 22. 08:33

[중앙일보] 2018.03.21 14:39

북핵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2>에번스 리비어


"2000년 클린턴ㆍ김정일 회담 추진,
북 미사일 포기할 준비 안 돼 무산"
외교 전통적 시각에서 회의론 제기
"진의 탐색 고위급 특사 회담 먼저"


“김정은 핵포기 준비됐나…‘체임벌린 시간’주면 안 돼”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북ㆍ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기회는 과거 한 차례 더 있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2000년 미사일 개발 중단을 위한 정상회담 추진이었다. 김 위원장이 그해 10월 “장거리미사일 생산ㆍ판매 및 사용을 중단할 준비가 됐다”는 친서와 함께 클린턴을 초청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1999년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방북하며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했던 에번스 리비어(69)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35년 외교관 이후에도 최근까지 이용호 외무상, 김계관 전 부상, 최선희 북미국장 등 북한 관리들과 ‘1.5트랙(반관반민)’ 대화를 계속한 경험과 외교 전통에서 나온 회의론이다. 
 
그러면서 “클린턴 대통령이 18년 전 평양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도 북한이 미사일관련 약속을 어겼고 합의할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갈 경우 미국 대통령의 평판과 존엄만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2차 대전 직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처럼 히틀러의 위장된 평화에 속아 시간을 줬던 것처럼 김정은의 동결 카드를 수락해선 안 된다”고도 조언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와 인터뷰는 10여 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며 이뤄졌다. 아래는 주요 문답.  
 
북한과 최근까지 대화해온 당신이 왜 북ㆍ미 정상회담에 회의적인가.
“나는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최종 단계에선 미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 지도자가 직접 만나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위태롭고, 위험하며, 또 적절하지 않다. 순서도 거꾸로다. 대통령은 전문가와 직업 외교관들이 이미 협상을 끝낸 합의문에 서명하고 축하하는 사람이다.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게다가 잘못하면 전쟁으로 이끌 수 있는 회담장에 대통령이 나가선 안 된다.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결과가 없는 정상회담은 결코 해선 안 된다는 게 외교의 법칙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수락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김정은의 약속 때문일텐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한 것처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고, 강경화 외교장관이 말한 대로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직접 약속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가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하고 회담에 나갈 거다. 따라서 이 회담의 최상의 결과는 북한으로부터 구체적인 비핵화 이행 계획을 약속받는 게 돼야 한다. 그런데 김정은이 정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느냐. 나는 믿지 않는다.

한ㆍ미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 약속에 사용된 표현들을 다시 검토하고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사고, 세계관, 선호하는 북한 방어 매커니즘이 기적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그는 비핵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양국은 기대를 낮추고, 북한의 야욕이란 현실과 다시 접목해야 한다.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아니면 회담 전에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하기 위한 탐색적인, 고위급 대화를 추진해야 할지를 고려해 봐야 한다.”

당신이 김정은 메시지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김 위원장이 한국의 특사들을 만난 지 보름, 또 트럼프 대통령이 특사들을 만나 정상회담을 수락한 지 열흘이 넘도록 북한 정부는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한다는 어떤 발표도 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핵무기는 북한 정권의 강력한 보검’이라며 ‘북한이 영구적인 핵 강국이란 현실을 미국이 인정해야 한다’는 결의를 밝혔는데 이 결심을 갑자기 바꿨다는 어떤 증거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정 실장이 방북 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비핵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은 북한과 협상을 해본 베테랑 외교관이라면 무수히 들었던 얘기다. 한마디로 미국이 사용하는 비핵화의 의미와 북한의 비핵화 비전은 전혀 다르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의 의미와 뭐가 다른가.
“나는 지난 수년간 비정부기구 대화에서 북한 고위 관리들로부터 ‘비핵화는 한ㆍ미 동맹과 주한미군 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제공한 핵우산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다. 북한은 이 세 가지 미국의 위협을 제거하는 조치가 선행되면 10~20년 내 안전하다고 느낄 때 비핵화를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 중엔 현재 이용호 북한 외무상도 포함된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한국 특사인 정 실장이 김정은에게 듣고 온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해석이 수주일 새 달라졌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행정부들도 그랬던 것처럼 이를 절대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정은의 진짜 의도는 뭔가.
“이용호 외무상이 한 번 얘기한 것처럼, 김정은은 미국과 정상회담을 동등한 핵무장국 자격으로 마주 앉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설사 회담에서 아무 이익을 챙기지 못해도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것 자체로 국제적 지위와 정당성을 확보하길 바라고 있다.

김정은의 목적은 미국으로부터 북핵 개발을 양해받는 것이지만, 여기엔 실패해도 미국과 수년간 끌게 될 대화 과정을 시작함으로써 계속 핵ㆍ미사일을 개발하고 핵무기고를 확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아마 ‘사찰 없는 동결’로 목적을 감추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결은 가까운 미래에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고 북핵 위협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선 핵미사일 능력 동결에 목표를 둬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검증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동결 또는 제한은 명목뿐인 환상이다. 과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과 감시반이 있던 상황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핵물질을 생산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하물며 지금처럼 북한 내에 아무 감시체제가 없는 상황에서의 동결은 물리적인 핵실험, 미사일 시험발사만 하지 않는 대신 핵미사일 대량 생산이나 기술 발전을 지속하게 허용할 뿐이다. 북한이 사찰과 검증을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6자 회담이 2005년 채택한 9ㆍ19 비핵화 공동성명이 결국 파기된 것도 북한이 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동결 카드를 수용해 2차대전 직전 히틀러의 위장 평화에 속은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처럼 시간(Chamberlain’s moment)을 벌어줄까 봐 걱정하는 이유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북한 비핵화 방법은.
“북핵 문제는 종착역(end game)을 향해 들어서고 있다. 미국은 지금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세 가지 옵션을 갖고 있다.
① 군사적 옵션
②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한 북 핵무기고를 동결 또는 제한하는 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수용하는 방안
③ 대규모의 전례 없는, 국제적으로 조율된 압박으로 북한이 경로를 바꿔 비핵화 협상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제한적 선제공격 같은 군사옵션은 북한 지도자가 이를 정권의 종식을 목표로 한다고 판단해 이를 막으려 자신의 무기고를 총동원할 수 있다는 점,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한국ㆍ일본 및 미국인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한 번도 검증 안 된 가설이란 점 등의 이유로 현재와 같은 민감한 국면에선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고 재고돼야 한다.

둘째, 북 핵무장의 제한적 수용도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현실성 없는 방안일 뿐 아니라 국제 비확산체제에 대한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이란 핵무장 등 연쇄 도미노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김정은이 핵무기가 오히려 정권의 종말을 재촉할 것이란 점을 깨닫고, 진정한 비핵화 의사를 가질 때까지 최대한 압박을 계속해 스스로 계산식을 바꾸게 하는 세 번째 옵션을 선호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계속하며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세 번째 옵션도 물론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최대한 압박 아래서도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자원을 총동원해 핵 개발을 계속하려는 북한과 씨름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유엔 안보리를 통해 해상 차단보다 한 단계 높은 해상 및 공중 검역(quarantine)을 하고,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을 추가 제한할 수 있다. 해외 은행에서 북한 자산의 동결과 몰수, 북한과 사업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외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북한을 겨냥한 군사훈련 범위와 주기 확대와 전략자산의 추가 배치, 역내 미사일 방어(MD) 강화, 대북 인권제재 강화, 사이버 영역의 비밀 작전 등도 있다. 북한의 경제와 인프라, 체제를 약화할 수 있는 훨씬 광범위하고 강도 높은 제재ㆍ압박 조치의 리스트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북한이 잠재적 경제 붕괴의 고통마저 감내하면서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시점이 온다면, 미국과 동맹국, 우방국들에겐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둔 군사력에 기반을 둔 접근이 필요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로버트 갈루치 대사는 정상이 좋은 분위기를 조성한 뒤 외교관이 본격 협상에 나서는 것도 좋다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목표가 외교관들에게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면 사실 정상회담은 필요 없다. 이미 양측은 지난달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합의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서로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탐색하고, 논의하기 위한 북ㆍ미 고위급 특사들 간의 대화가 돼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뜻을 굳힌 것 같다. 국무장관에 지명된 폼페이오 CIA 국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폼페이오는 대통령이 그에게 요청하는 역할이 뭐든지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또 CIA의 수장으로서 폼페이오는 북한의 핵 능력과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정상회담의 위험성과 주의할 점에 대해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나로선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고 김정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폼페이오가 대통령을 설득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경솔하며, 참모들은 물론 동맹국과도 아무 조율 없이, 잘못 계획된 위험한 회담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말기를 바란다.”
 
틸러슨 장관의 갑작스러운 경질의 영향은 없겠나.
“틸러슨 장관의 해고는 방식이 놀라울 뿐 해고 자체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필수적인 북한과 예비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줄었다. 조셉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직전에 은퇴해 준비팀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이를 막기 위해 군사옵션을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져들게 될 가능성이 높다. 평양은 트럼프가 전자를 선택하길 원하겠지만, 그는 회담이 실패하면 후자를 선택할 수 있다. 폼페이오 국장도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대로 군사옵션을 지지할 수 있다.”
 
실패한다면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뭘 해야 하나.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과 만나도록 설득하기 위해 실제 김정은이 직접 약속을 공표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할 준비가 됐다는 인상을 줬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주장을 수용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한국은 오히려 회담 실패 시 군사적 옵션이나 실효성 없는 동결 옵션을 보다 가능성 있게 만들었다. 또 북핵 문제를 진정한 해결로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제재를 포함한 최대한 압박 정책을 빈 껍질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국면을 조성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모든 전문가가 직시하듯이 둘이 대면했을 때 김정은이 비핵화에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회담은 실패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나기로 한 데 굴욕감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모든 옵션이 테이블로 올라오게 된다면, 한국 정부는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그토록 열심히 추진했어야 했는지 냉정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워싱턴=김현기·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