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23 조중식 국제부장)
빅데이터, 가족보다 정확하게 이용자의 성향 속속들이 파악
정보 유출·댓글 공작 파문은 IT 기업의 추악한 裏面 드러내
조중식 국제부장
미국 대형마트 '타깃(TARGET)' 매장에 한 남성이 뛰어들어가 "고등학생에게 임신을 부추기느냐"고
직원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고등학생 딸에게 아기 옷과 수유 제품 등 출산용품 할인쿠폰이 담긴 우편물을
보냈다는 것이다. 며칠 뒤 매장 직원이 다시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그 남성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딸이 임신한 걸 뒤늦게 알았다"며 되레 사과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이 사례는 빅데이터 분석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무엇을 어떤 주기로 구입하는지, 구매 행태 분석만으로 딸의 임신을 아버지보다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기술 기업들이 빅데이터 분석을 상품 마케팅에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8700만명 페이스북 이용자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기술 기업들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라는 정치 컨설팅업체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성별·거주지·직업·친구·위치 정보와,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를 수집하고 분석해 그들의 성향을 파악했다.
빅데이터 분석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이용자의 정치·종교·소비 성향뿐 아니라 성적(性的) 취향까지 파악했다.
CA의 데이터 분석에 가담한 전문가들이
"그렇게 수집한 정보가 당신의 부모나 애인이 당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분석 자료는 2016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 측의 선거 운동에 활용됐다. 선거 광고를 누구에게 내보낼지,
어떤 선전 문구를 사용하면 그 사람이 호의적으로 반응하는지, 철저히 계산된 정치 심리전에 이용된 것이다.
CA의 정치 심리전이 개별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드루킹'의 댓글 공작은 전체 여론을 조작하고 오도하려는
시도였다. 무서운 것은 그들의 시도가 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집중적으로 댓글 작업을 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급변이 있었다.
페이스북 사건과 드루킹 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사건을 저지른 주체는 CA와 드루킹이다.
그러나 판을 깔아준 것은 페이스북과 네이버다.
이 공룡 IT 기업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만큼이나 투명하고 공정한 정보의 유통·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네이버는 검색어와 댓글에 실시간으로 순위를 매겨 경쟁을 조장했다.
특정 집단이 그 경쟁에 뛰어들어 여론 조작을 시도할 유혹을 느끼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크로'라는 프로그램으로 순위 조작이 가능한데도, 네이버는 그에 대한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소홀했다.
댓글과 검색이 활성화될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IT 기술 기업은 인류 진보에 기여한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토대로 성장했다. 청년들은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에 열광하며
관대했다.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가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수평적인 관계 맺기와 정보 공유를 통해 소통에 기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페이스북 정보 유출과 드루킹 사건은 거대 기술 기업이 사회의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론을 조작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소통의 확장이 아닌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해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견해가 다른 주장이나 콘텐츠는 '클릭' 한 번으로 차단시켜 아예 보이지 않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구글의 모토이다.
이윤 앞에 절제되지 않는 IT 기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네이버는 사악해지고 있지 않은가. 깊게 자문(自問)해 보길 권한다.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몰볼 작전" vs "또 속았다"···남북정상회담 전문가 평가 (0) | 2018.04.30 |
---|---|
[중앙시평] 강철 먹는다고 몸에 철분이 강화될까 (0) | 2018.04.29 |
[동아광장/로버트 켈리]남북 정상회담, 서두르지 말라 (0) | 2018.04.22 |
[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에 인공지능산업 시장과 고객 다 넘겨줄 건가? (0) | 2018.04.21 |
<시론>잘못된 공약 버려야 나라가 산다 (0) | 2018.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