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21 변양호 前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데이터 활용 풍부할수록 인공지능 성능 더 뛰어나
韓, 데이터 사용 제한 과도해 中에 관련 산업 다 뺏길 우려
개인·산업정보 활용 활성화에 정부와 국회 더 적극 나서야
변양호 前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요즘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사용하는 집이 많다. 원하는 음악도 들려주고 날씨도 알려준다.
대화를 많이 할수록 더 잘 알아듣고 재미있게 대답해 준다.
이제는 온라인쇼핑도 해주고 배달음식 주문도 가능해졌다. 새로운 기능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이 최근 내놓은 소설 '오리진'을 보면 인공지능 비서의 '끝판왕(王)'인
윈스턴이 나온다. 주인공 에드먼드는 천재 컴퓨터과학자로서 억만장자이다.
그는 필생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그를 도와줄 조력자로서 인공지능 비서 윈스턴을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개발했다.
윈스턴은 모르는 게 없다.
경찰에 쫓기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목적지로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제시하는 등 돌발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조언한다. 전능(全能)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전지(全知)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산업을 보면 일반인들도 언젠가는 윈스턴과 같은 인공지능비서를 옆에 둘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인공지능비서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데이터'이다.
충분한 데이터 없이 정확한 분석을 하기 어렵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데이터를 주고 공부시키면 더 좋은 성능을 발휘한다.
제한된 데이터만 제공받은 인공지능은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받은 인공지능을 이기기 어렵다.
요리사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식자재가 부실하면 좋은 음식을 만들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데이터 사용에 있어 제한이 많다. 개인정보보호 제도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2014년 카드사 신용정보 유출사건 이후 관련 규제가 더 엄격해졌다.
최근 페이스북에서도 발생했듯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事故)는 간혹 발생한다.
선진국들은 사고의 책임은 묻지만, 우리와 달리 데이터 활용 자체를 근원적으로 틀어막지는 않는다.
중국은 개인 관련 데이터 사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이다. 사생활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데이터 사용 제한이 많은 우리나라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을 따라가기 어렵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만든 금융투자부문 인공지능 어드바이저는 중국에서 만든 인공지능 어드바이저를 이기기 힘들다.
앞으로 투자자문 비즈니스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뺏기게 될 것이란 얘기다.
투자자문뿐만 아니라 의료자문·법률자문 등 모든 인공지능산업에서 중국에 고객과 시장을 잃게 될 수 있다.
미국도 최근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미국의 데이터 사용은 우리나라보다는 자유롭지만 중국보다는 엄격하다.
또 중국의 총인구는 미국보다 훨씬 많아 더 큰 데이터 풀(pool)을 갖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때문에 유전자 시장을 비롯해 인공지능 관련 시장을 고스란히 중국에 뺏기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데이터를 더 자유롭게 사용하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가 내놓은 개인정보 활용 방안은 의미가 있다.
개인을 식별(識別)할 수 없도록 처리된 개인 정보를 비(非)식별정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 활용 기준이 법제화되지
않은 채 가이드라인에 의해서 이뤄져 왔다.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가 불분명해 기업들이
매우 조심스러웠는데, 정부가 이를 법제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 신상(身上)에 관한 정보를 암호화한 후, 암호 키(열쇠)를 별도로 안전하게 관리하는 경우에는
그 데이터도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것이다. 미국보다 사생활 보호가 강한 유럽연합(EU)이 다음 달부터 전면 시행할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과 유사한 수준이다.
산업 간 데이터 결합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금융·통신·의료 등 이종(異種) 산업 간의 비식별정보들을 결합하면 훨씬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반면,
개인 식별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관련 산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을 통해서라도
비식별화된 데이터들의 결합을 허용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중국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산업은 '디지털 시대의 금광(金鑛)'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산업의 발전이 데이터 활용 정도에 달려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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