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oto by 조선DB |
북(北)의 표정이 돌연 달라졌다. 한-미 군사 훈련을 이유로, 또는 태영호 전 북한 주영공사의 강연 내용을 핑계로 남-북 고위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더니, 그 직후엔 김계관이란 전직 고위 외교관을 내세워 “우리의 일방적인 핵 포기를 강요하려 한다면 미-북 회담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한민국에선 태영호 씨 듬 누구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린지, 그리고 원칙적 입장이란 것은 자기들만 있고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없다는 것인지도 의아할 따름이다.
이런 정세가 일종의 삿바 싸움인지, 근본적인 태도변화인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 ‘좋은 경찰관(굿 캅) 폼폐이오와 달리 ’나쁜 경찰관(뱃 캅)‘ 볼턴이 “북한은 핵무기를 리비아 식으로 해체해 미국 오크브리지로 갖다놓아야 하고,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 무기 등 다른 대량살상무기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하자, 김정은이 이에 바짝 긴장한 것 같다.
미국이 말하는 ‘북한 핵 폐기’와 김정은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당초부터 그 뜻이 달랐다. 미국의 뜻은 볼턴이 말한 바와 같았고, 김정은의 뜻은 자기들의 단계적인 조치에 맞춰 미국도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을 철거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미북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북 수교를 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연방제 통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태영호 공사의 말처럼 북한을 ‘핵 폐기란 종이로 포장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이 마치 처음부터 핵 폐기를 일방적으로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았다. 왜? 세 사람 다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공산당 특유의 현혹(眩惑) 쇼를 한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국면에 몰린 자신의 정치적인 압지를 위해서라도 미-북 정상회담을 최대한 우려먹어야 할 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한 변혁운동권의 대표 페이스로서 당연히 신판 햇볕정책으로 매진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세상엔 될 일 있고 안 될 일 있다. 미국의 북 핵 해법(예컨대 볼턴 방식)과 김정은의 해법이 완전한 합치점에 이를 길은 사실상 없다. 그러다 보니 언제 터질 게 터진 셈이다. 김정은이 자신의 세습왕권과 폭정은 고스란히 유지한 채, 그리고 북한의 존재이유인 ‘남조선 혁명론’도 조금도 수그러뜨리지 않는 채 오로지 한-미 동맹 와해-남한의 체제변혁-대북 경제지원만 노리는 방식에 집착하는 한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혁명’으로 가는 징검다리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북 회담이 이 길로 불발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도 미-북 회담을 열어서 잃을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얻을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 얻을 것을 위해 두 사람은 모처럼 열린 기회를 그렇게 쉽게 버릴 것 같지는 않다. 회담이나 협상이란 결국 흥정이고, 흥정엔 여러 가지 강-온(强-穩) 게임과 기복이 있게 마련이다. 앞으로 수시로, 수도 없이 이렇게 갰다 흐렸다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미국은 공산당 김정은의 본심이 거짓되고 시꺼멓다는 사실 하나만은 항상 염두에 두고서 강경책을 쓰든 온건책응 쓰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문재인 정권과 한국의 미디어들처럼 김정은을 무슨 인기 연예인 대하듯 대했다가는 큰 낭패를 초래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