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7.31. 00:26
한국 사회 최대 문제라는
100세 철학자의 충고
'전부 아니면 전무' 벗어나
다수의 인간다운 삶 위한
회색의 공통분모 찾아야
그 연원을 김 교수는 주자 성리학에서 찾고 있다. 형식논리에 치우친 주자 성리학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회색을 인정하지 않는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이 뿌리내렸다는 얘기다. 현실에는 밝거나 짙은 수없이 다양한 회색이 있을 뿐 완전한 흑과 백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우리 선조들은 회색을 가장 나쁘게 여겨왔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회색을 모두 배제하면 삶의 현실은 내팽개쳐지고, 흑백논리를 갖고 싸우는 동안 인간과 사회는 병들게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가장 낮은 62%까지 떨어졌다. 지방선거 압승 이후 79%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 반 새 17%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특히 20대의 지지율이 평균을 밑도는 60%로 떨어졌고, 자영업자의 지지율은 55%까지 급락했다. 지지율이 너무 낮아도 문제지만 너무 높은 것도 정상은 아니다. 30~50%대에서 왔다 갔다 하는 미국이나 일본·프랑스에 비하면 62%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추세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주 연속 내리막이다. 지지율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와 민생이다. 어느 날 갑자기 경기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청와대의 진짜 고민이 있을 것이다. 공약을 이행한다며 느닷없이 퇴근길 시민들과 호프집 미팅을 한 문 대통령의 행보에서 절박함이 묻어난다.
어떤 경제정책도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할 순 없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도라면 끈기를 갖고 진득하게 추진해야 하지만 국민에게 인내심을 요구하기 어려운 게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 탓에 당장 일자리를 잃는 빈곤층과 가게 문을 닫게 생긴 영세 자영업자들 입장에선 정부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붙이고 고용 증대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지만 고용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정부가 만드는 공공 일자리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이 나서야 하지만 기업이라고 무작정 일자리를 늘릴 순 없다. J노믹스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정부도 흔들리고 있다. 재벌 개혁이 주춤거리고, 과거의 성장 우선 패러다임으로 회귀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발해 진보 진영 학자들이 성명서를 내고, 시민 단체와 노동 단체도 반기를 들고 있다.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처음부터 문재인 정부가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의 현실을 인정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J노믹스를 추진했다면 이 정도로 상황이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이 대표적이다.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다. 생각과 논리가 다르다고 무조건 배척하고, 정책 실패를 바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건 문제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따질 건 따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화뿐이라고 강조한다. 대화는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며 공통분모를 찾는 과정이다. 아쉽더라도 회색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한 해법의 지향점은 더 많은 사람의 인간다운 삶이다. 지금이라도 대화를 통해 손 볼 건 손 보고, 덜어낼 건 덜어내는 것이 덫에 걸린 J노믹스를 그나마 살리는 길 아닐까. 다 붙들고 있다가는 다 놓친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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