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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바람아님 2018. 8. 4. 09:28
아시아경제 2018.08.03. 06:56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트로이체 리코보(Troitse-Lykovo)는 모스크바 서쪽에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2008년 오늘 이곳에서 죽었다. 향년 89세,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한 시대의 양심으로서 존경받은 소설가의 죽음을 온 러시아가 애도했다. 솔제니친의 시신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안치되자 조문객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도 이곳을 찾아 애도했다. 장례식은 돈스코이 사원에서 러시아 정교회 식으로 열렸다.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1951년 스탈린 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힌 사나이의 하루를 담담하게 묘사했다. 주인공 이반은 서민 출신으로, 생활력이 강한 인물이다. 그의 강한 영혼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초월한다. 그럼으로써 세속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수용소 생활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낸다. 이 작품은 강제노동수용소 수감자들의 비인간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솔제니친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차분히 그려나간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의 문장에서 유머까지 발견할 수 있다. 솔제니친 문학의 힘과 진실이 그곳에 있다.


스웨덴 학술원은 1970년 솔제니친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솔제니친은 러시아(당시 소련)로 돌아가지 못할까 두려워 상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그는 작가로서 양심과 정치적 신념 앞에서 꿋꿋했고, 그 대가를 치렀다. 시련은 일찍 시작되었다. 포병 대위로 동프로이센에 근무하던 1945년에 스탈린을 비판한 글을 편지에 썼다가 체포돼 강제노동수용소 8년, 추방 3년형을 받았다. 1967년엔 소련작가대회에 '검열폐지'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때부터 소련에서 발표하지 못한 작품을 해외에서 간행한다.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파헤친 '수용소 군도'를 발간하자 소련 정부의 인내도 바닥났다. 솔제니친은 1974년 2월 강제 추방됐다. 그는 미국 버몬트 주의 카벤디시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94년에 귀국해 트로이체 리코보에 칩거했다. 버스도 오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조차 텔레비전을 보고 솔제니친이 한 마을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두문불출했다. 그는 지하 서재에 틀어박혀 글을 쓰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러시아의 전통과 도덕적 가치의 회복을 촉구했다.


나는 중학생일 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처음 읽었다. 국어 선생님과 나눠 읽고 생각을 주고받았다. 나는 "이 책이 노벨상까지 받을 정도로 훌륭한지 모르겠다. 등장인물들이 먹는 데 집착하며 내용도 단조롭다"고 했다. 선생님은 작품이 드러내는 '인간의 꺾이지 않는 생명력과 의지'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산 책은 양장본인데 번역이 좋지 않고 맞춤법이 형편없었다. 지금은 없다. 친구가 빌려갔다가 잃어버렸다. 그 일로 친구와 심하게 다퉜다. 소중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사춘기 소년이 흔히 그러하듯 나는 국어 선생님을 사모했다. 나는 솔제니친의 책을 매개로 선생님과 처음으로 교감했다.


나는 책을 잃어버린 다음 다시 사지 않았다. 선생님과 함께 읽은 그 책의 유일함을 훼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huhb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