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김기천 칼럼] 소득주도성장론의 오만과 미망

바람아님 2018. 8. 8. 09:51

조선비즈 2018.08.07. 04:00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는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다고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오만(휴브리스·hubris), 사리분별을 못하는 미망(아테·ate), 인과응보의 파멸(네메시스·nemesis)이 그것이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자만과 교만은 비극의 씨앗이다. 휴브리스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고, 눈 앞에 다가온 위험도 느끼지 못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아테’는 망상, 어리석음, 눈이 먼 상태 등을 가리킨다. 네메시스는 흔히 복수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내가 자초한 운명적인 벌을 뜻한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나 인과응보와 통한다.


영국 경제학자 다이앤 코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 세 가지 요소로 설명했다. 먼저 인류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비결을 깨우쳤다는 오만과 착각이 있었다. 금융시장 규제 완화와 세계화의 성취에 대한 자만이 있었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증대로 새로운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이 출현했다고 오판했다.


이어 미망의 어리석음이 나타났다. 자산 시장 거품에 대한 일부 경고가 있었지만 정책당국과 금융회사, 투자자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했다. 극히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으로 거품을 키우고 위기를 증폭시켰다. 탐욕에 눈이 멀어 임계 수준에 달한 불균형과 위기의 징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파국이 닥쳤다. 대부분의 경제 위기는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는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서도 이런 요소를 엿볼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과 자신감이 그 출발점이다. 정부가 처음 소득주도성장론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경제학자들이 당혹감을 느꼈다. 개념이 분명치 않고, 이론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듣도보도 못한 이론이었다.

소득으로 성장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데 그 소득은 어디서 나오느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마차를 말 앞에 둔 것처럼 소득과 성장의 인과관계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정책 실험을 밀어붙이는 데 대한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눈도 꿈쩍이지 않았다.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주류 경제학은 이미 효용을 다했기 때문에 주류의 공격에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이런 단정 자체가 무리한 주장이다. 더욱이 주류의 한계가 드러났으니 그 반대로 가고 있는 우리가 옳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이고 억지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소득을 늘려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국가주의적 오만과 착각은 정책 폭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을 압박하고 위축시키는 정책이 줄을 이었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매달 20만~30여만명에 이르던 취업자 증가폭이 올들어 갑자기 10만명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다. 최저임금이 16%나 올랐는데도 소득 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지난 1분기에 작년 같은 기간보다 8%나 줄어들었고, 소득불균형이 악화됐다.


2분기 들어서는 생산·투자·소비 등 경제 주요 지표 대부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소비자 기대지수, 기업경기 실사지수 등 경제 심리도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경기가 추락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파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이런 사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가 “고용부진은 인구 구조 변화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자영업자들의 추락은 수수료와 임대료 탓이라고 우기고 있다. 당사자들도 모르는 비밀을 찾아낸 듯이 호들갑을 떨며 억지로 대책을 짜내고 있다.

경기둔화에 대해서도 처음엔 그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강변했다. 그러다 얼마전부터는 과거 정부와 신자유주의 탓을 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오류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논리와 변명, 핑계를 동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여권이 소득주도성장 대신 포용적 성장을 더 자주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기존 정책을 계속 끌고가기 위한 ‘분식’이고 속임수다. 중국 전통 공연인 ‘변검’에서 순식간에 가면을 바꾸며 기교를 부리는 것과 비슷하다. 겉포장이 달라져도 알맹이는 그대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혁신성장을 위해 나름 열심히 뛰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권의 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방문을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듯이 김 부총리의 행보를 마뜩잖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같은 관료 출신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제외하면 경제팀 내에서도 거의 고립무원 신세다.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 정부는 당분간 소득주도성장론의 오만과 미망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다 유로존 성장률이 꺾이는 등 세계 경제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대내외 경제 환경이 모두 심상치 않게 바뀌고 있다. 네메시스의 그림자가 눈 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조선비즈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