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0.01 조중식 국제부장)
트럼프 "FTA 파기" 협박 전화, 전전긍긍 달래는 모습에 울분
美보다 北 비핵화 더 절실한데 '김정은 대변인' 평가 왜 받나
조중식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누가 우리의 달러를 받고 보호를 받는지,
누가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지 검증하겠다"고 했다.
또 "미국은 우리를 존경하고 우리의 친구라고 할 만한 이들에게만 원조하겠다"고 했다.
자유·인권·호혜적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앞세워 세계화를 주도해온 미국이,
앞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관계하는 국가들은 그 질서에 순응하라는 주문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달러를 받고(무역 흑자), 보호도 받는(핵우산)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은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지, 미국으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 검증이 우리에게 가혹한 도전일 수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가 최근 펴낸 책 '공포(Fear)'에는 한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트럼프는 한·미 군사동맹(주한미군)과 경제동맹(한·미 FTA)을 언급하면서 수시로 'f×××××g' 's××t' 같은 욕설을 내뱉는다.
"우리는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데 연간 35억달러를 쓰고 있다.
씨×(f×××××g), 철수시켜라." "씨×(f×××××g), (주한 미군) 필요 없다.
그래도 아기처럼 잠만 잘 잘 거다"고 했다.
성주의 사드를 두고 "×(s××t) 같은 땅이다. 때려치우고(f××k it) 빼서 포틀랜드에 갖다 놔라"고 했다.
한·미 FTA와 관련해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이 통화한 대목에서는 문 대통령에게 감정이 이입되면서 울분이 치솟는다.
트럼프는 "180일 안에 한·미 FTA를 무효화하는 편지를 보내고 싶다"며 "당신들이 우리를 약탈하고 있다"며 몰아붙였다.
문 대통령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달래려 했다.
미국 안보팀 고위 관료들조차 문 대통령이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나올까봐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우드워드는 전한다. 백악관
깊은 곳에서 트럼프의 욕설로 더럽혀지고 있는 한·미 동맹은 그의 엘리트 참모들에 의해 위태위태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트럼프' 때문에 생겼을까. 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은 아니다.
미국의 선거 시스템을 거쳐 탄생한 대통령이다. 그를 당선시킨 배경이 한·미 동맹에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약 8000억달러(약 880조원) 무역 적자와 6650억달러(약 740조원)의 재정 적자를 봤다.
적자의 상당 부분은 세계 각지의 분쟁 개입과 다른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데 들어간 돈이다.
갈수록 생활이 팍팍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미국인들이 더 이상 그런 돈 쓰는 걸 참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을 미봉해도 괜찮은 나라다.
북한이 자멸(自滅)을 선택하지 않는 한 미국에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없다. 한국은 아니다.
미봉만 하고 "북핵 해결됐다"고 공표한 이후의 상황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트럼프보다 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대통령이 등장해 "북한 비핵화도 됐으니 한국에 대한 핵우산은 명분이 없고 주
한미군도 철수시키자"고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보다 더 철저하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북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미국이 강하고 한국은 약하게 비친다.
미국은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남북 경협으로 제재의 틈을 노리는 형국이다.
그래서 미국 언론으로부터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굴욕적인 평가를 무릅쓰는 문 대통령의 심정에는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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